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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아우티오 추진위원으로부터 들어본 핀란드의 헬싱키 댄스하우스 건립기

 

댄스하우스 입구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은 지난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대표 레퍼토리 〈회오리(VORTEX)〉를 공연하여 큰 호평을 받고 귀국하였다. <회오리>는 2014년에 핀란드의 대표 안무가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이 창작한 작품이다. 8년 만에 안무가의 고향에서 올려진 작품에 대해 핀란드 관객들은 열광적이었으며, 연속 매진에 2천여 명의 관객이 연일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현지 반응을 전한 손인영 예술감독은 공연무대였던 헬싱키 댄스하우스(Dance House Helsinki)에 대해 무용계와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테로 사리넨 컴퍼니의 매니저이자 헬싱키 댄스하우스 건립을 주도했던 이리스 아우티오(Iiris Autio) 추진위원과 나누었던 인터뷰 내용을 기사로 전송해왔다.


유럽에는 27개의 댄스하우스(국립무용극장)가 설립되어 있고, 이들은 EDN(Eureopean Dancehouse Network)을 형성해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활발한 교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현재 홍콩이 2024년 개관을 목표로 홍콩 댄스하우스를 건립하고 있다. 댄스하우스와 유사한 성격인 국립무용원은 대한민국 무용계 숙원사업의 하나이다. 무용계는 2018년에 국립무용원 건립추진단을 조직하여 기초조사 및 공청회를 비롯한 여러 사업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문화관광체육부는 국립무용원 조성을 위한 용역조사를 마치고, 다음 단계인 부지선정과 예산확보를 남겨두고 있다. 댄스포스트코리아는 국립무용원 건립을 위한 무용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촉구하며 손인영 예술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 가감 없이 게재한다. 이 기사의 내용은 다른 지면과 공유될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편집국). 


핀란드 무용가들은 댄스하우스 건립을 위해 90년간 투쟁
 
손인영: 한국은 25년이 넘도록 댄스하우스를 지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아직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헬싱키 댄스하우스를 둘러보니 꼭 필요한 시설들로 채워져 있어 무척 부러웠다. 수도인 헬싱키에 어떻게 댄스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는지 상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아우티오: 핀란드에서는 댄스하우스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 지가 거의 90년이 되었다. 1930년대부터 무용가들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안무자인 메기 그리펜버그(Maggie Gripenberg)가 처음으로 댄스하우스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했다. 모던댄스를 제대로 올리려면 무용전용극장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1937년에 무용가들은 그들을 대변하는 협회(Union of Finish Dance Artists)를 창설하여 그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런 것을 할 만큼의 여력은 없었기에 이 얘기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후 1980년대에 도리스 레인(Doris Laine)이 중심이 되어 다시 댄스하우스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데모도 했다(사진 참조 1986년 4월 29일). 당시 헬싱키 중심가가 아닌 외곽지대에 댄스하우스를 세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아주 작은 공간이었고 극장보다는 스튜디오 위주의 공간이었다. 당시 건축설계까지 논의가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진행이 안 되었다. 

댄스하우스 조성을 위한 무용가들의 데모(1986.4.29.)


이후 1999년에 핀란드댄스협회가 결성이 되고 2000년도에 또 한 번 얘기가 돌았다. 당시 오래된 알렉산더극장을 리노베이션해서 쓰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극장이 소극장이라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스컴퍼니가 와서 공연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나 모두 여의찮았다. 장소도 장소지만, 정부나 헬싱키시에서는 공간을 새로 조성하는 문제에 대해서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춤은 예술 중에서 가장 비인기 종목이기도 했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2007년에 다시 댄스하우스 추진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 댄스하우스를 만드는 일이 유토피아이거나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1년에 핀란드의 유명한 안무가였던 알포 알토코스키(Alpo Aaltokoski)가 주축이 되어 무용계를 이끌던 20명 정도가 추진위원이 되어 댄스하우스의 추진을 시작했다. 먼저 하나 마리(Hanna-Mari Peltomaki)라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했다. 큐오피오 댄스페스티벌을 맡기도 했고 정치나 이런 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헬싱키시가 파트너가 되어 도시 안에 합당한 건물이 있는지 리서치를 시작했다. 당시 노키아 건물에 예술가들이 이미 렌트를 하여 쓰고 있었기에 그 건물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스튜디오나 사무실은 노키아 건물을 쓰고 옆에 딸린 부지에 무용전용극장은 새로 짓기로 했다.

손인영: 노키아 건물이 있다고 해도 리노베이션도 해야 하고 또 극장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재원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아우티오: 맞다. 나도 그 추진위의 일원이었는데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계획만 세웠지 돈을 어떻게 조달할지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었다. 당시 헬싱키시도 댄스하우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의 노키아 건물을 이용하기로 했으나 돈이 없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용을 굉장히 좋아하는 독지가가 있었는데, 당시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을 설립한 상태였다. 우연히 그 독지가에게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지원을 요청했더니 너무나 흔쾌히 “예스”라고 했다. 문화재단은 1,500만 유로(209억 정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정부와 헬싱키시가 나머지 반을 지원한다면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댄스하우스를 짓는데 3,600만 유로(500억 정도)가 드는데 정부와 시가 반 정도를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정부와 헬싱키시가 그 제안을 승낙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 생각에 독지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절대 댄스하우스를 만들지 못했을 거다. 무용은 음악이나 연극에 비해 아무래도 인기가 없기에 기업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손인영: 대한민국 무용계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댄스하우스 건립에 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등은 마련되었는데 부지 선정과 재원이 문제이다. 정부나 시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보니 선뜻 지원받기 어렵다. 어떻게 독지가의 기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

아우티오: 그 독지가는 춤을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살아 계실 때 이미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유산으로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 사실 그 재단은 아주 재산이 많았기에 댄스하우스를 그들의 돈으로 지을 수도 있었으나 정부와 시에서 반을 내도록 한 것은 상당히 머리를 잘 쓴 것이다. 댄스하우스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유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것까지 그 독지가는 생각했었다. 

손인영: 이후 추진위원회에서 어떻게 댄스하우스를 건립해 갔는가?  

아우티오: 2014년에 독지가로부터 돈을 받았고 그때부터 댄스하우스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협의를 시작했고 건축설계를 공모했다. 장소가 협소했기에 가장 합당한 설계를 찾아야 했다. 2020년에 건축을 시작했는데 그전에는 시와 정부가 댄스하우스에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도 명확히 해야 했기에 실질적인 건축을 하기까지 14년부터 2020년까지 긴 시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손인영: 어떤 시설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아우티오: 극장은 모두 가변형으로 지어졌다. 대극장 에르코홀은 700-1,000석, 소극장 파누홀은 235-400석 정도의 객석을 만들 수 있다. 공연 단체의 연습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카페도 갖추고 있다.


댄스하우스의 카페


댄스하우스의 극장 내부



극장경영은 전문가, 4개 무용단체가 프로그램 자문, 운영경비는 정부와 민간재단에서 지원

손인영: 추진위원회에서 애를 쓴 분들이 많았는데, 댄스하우스의 운영과 관련해서 중요한 직책을 놓고 갈등 같은 것은 없었나? 그들의 공과 때문에 댄스하우스 이사들은 무용가들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아우티오: 그렇지 않다. 댄스하우스를 이끌어가는 주요 이사들은 무용가들이 아니다.

손인영: 의아하다. 그럼 추진위원회에서 조성을 위해 애쓴 무용가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는가? 

아우티오: 아까도 얘기했지만, 처음에는 20명의 무용가가 논의를 오래 해오다가 돈을 받은 2014년 이후에는 프로젝트 매니저인 하나가 극장을 제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이사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무용가들은 빠지고 무용을 사랑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힘이 있거나 마케팅이나 홍보 등 전문가들로 6-8명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다양한 사안을 결정하고 극장을 전문적으로 이끌고 있다. 하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프로젝트 매니저로 있었는데, 그녀의 끈질긴 설득으로 무용가들이 그녀를 믿고 그녀의 결정에 따랐다.  

손인영: 그러면 댄스하우스의 운영과 관련 중요한 결정은 누가 하는가? 

아우티오: 지금은 새로운 매니저가 선임되어 극장을 경영하는데, 물론 전문가 그룹인 이사회가 극장의 크고 작은 결정을 하게 된다. 현재 댄스하우스는 정부의 기관으로 되어 있고, 4개 무용단체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즌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4개 단체는 핀란드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단체들이다. 서커스 단체인 써코, 후르자루트 댄스 씨어트, 테로 사리넨 컴퍼니, 젊은 안무가들의 그룹인 조디악이다. 이들이 극장에 올릴 프로그램을 결정한다. 결국 책임을 지고 극장의 프로그램을 올려야 하기에 예술적으로나 흥행 면에서 실패하게 되면 4개 단체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손인영: 테로 사리넨이 핀란드에서 워낙 알려진 무용가이고 전문 무용단체로도 테로 사리넨 컴퍼니가 유일하긴 한데, 어떻게 이런 큰 역할을 맡게 되었는가?

아우티오: 거액을 기부한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의 독지가는 테로가 젊었을 때부터 후원하고 있었고 테로의 공연을 아주 좋아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 독지가에게 기부를 부탁하기도 했기에 당연히 얻을 수 있었던 혜택이 아닌가 싶다. 헬싱키 댄스하우스의  첫 해외단체 공연으로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올렸는데, 3회 공연이 모두 매진이 되는 엄청난 일을 해내 아주 기분이 좋다. 사실 좀 더 많은 날짜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오프닝 프로그램이라 안전하게 가려고 그랬는데 아쉬웠다.

손인영: 4개의 파트너 단체들이 프로그램을 결정한다면, 그럼 해외 무용공연은 테로가 주로 결정하는가?

아우티오: 그렇다. 극장은 크게 3개의 프로젝트로 나눠서 지원받고 있고 지원처도 다르다. 댄스하우스의 모든 활동은 헬싱키시와 타이케(Art Promotion Centre Finland)에서 받은 돈으로 경영한다. 스팍스(Sparks) 프로젝트는 주로 젊은 안무자를 위한 공연으로 소극장에서 하는데, 이것은 핀란드정부의 지원으로만 경영한다. 해외공연에 드는 돈은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에서 지원하므로 아무래도 테로가 주로 결정한다. 

손인영: 아까 독지가가 극장을 짓는 것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영하는 것까지 생각했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얘기한 건가? 

아우티오: 그렇다. 댄스하우스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면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댄스하우스를 지어도 경영에 문제가 생길게 뻔하다. 특히 무용은 비인기 예술이기에 더더욱 지원이 없다면 지속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무용가들에 의해서 움직이면서도 시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또한 재단법인의 지원도 받고 있다. 곧 재정적인 뒷받침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는 극장이 잘 돌아가다가 나중에는 그 가치가 상실될 수도 있다. 극장의 공연이 재미가 없다고 소문이 나거나 작품의 수준이 낮다면 관객들이 무용공연을 보러 가지 않게 될 것이기에 극장을 경영하는 극장장과 이사회, 그리고 파트너들은 최선을 다해 작품을 선정하고 최고의 예술품을 올리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본다.

손인영: 하나의 기관을 조성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즉 안정된 운영을 위한 여러 가지에 대해 많은 유용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내용의 인터뷰에 감사드린다.


이리스 아우티오(전 헬싱키 댄스하우스 건립 추진위원)과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인터뷰 기사 및 사진 제공_ 손인영(국립무용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