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루거는 1989년 여성의 얼굴 위에 ‘Your body is a battleground’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포토몽타주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1989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여성의 낙태권 회복을 위한 시위의 포스터로 제작되어 지금은 모마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 임신과 출산에 있어 여성 스스로 임신의 중단을 결정하지 못하고 그 권리를 남성이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몸에 간섭하고 관여해 통제하는 오래된 수단으로, 여성들은 자신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싸움 안에서 여성의 몸은 인간의 신체가 아닌 전장(戰場)이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전쟁은 비단 임신 중단권에 대한 싸움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탈코르셋’이라 불리는 ‘여성성의 기호 지우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은 말 그대로 긴 머리카락이나 메이크업, 스커트, 하이힐 같은 ‘여성’의 것으로 인식되는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다. 즉, 위에서 언급한 여성성의 코르셋들은 여성으로 인식되기 위한 별도 설정이기에 이러한 설정을 다 걷어내고 기본 설정값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김혜경
2018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용 우수작으로 공연된 허성임 안무의 <넛크러셔(Nutcrusher)>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는 여성으로, 무용가로, 아시아계 이민자로 유럽무대에서 활동하는 동안 만난 연출가와 안무가들이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경험하며, 그리고 해외에서도 매우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댄스에 있어서도 여자 아이돌그룹의 안무가 여성의 신체를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사회에서 바라는 여성의 몸, 또는 여성의 역할은 대단히 한정돼 있고 규격화돼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인 ‘Nutcrusher’는 ‘호두 분쇄기’라는 뜻으로, 우리에겐 송년 레퍼토리로 익숙한 발레 <호두까기인형>을 보다가 영감을 받았다. 발레의 여성 무용수는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이고 남성 무용수와의 역할 구분이 엄격하다. 허성임이 공연을 통해 던진 질문을 곱씹으며, 더욱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Q: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공연이라서 작품 얘기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에너지가 대단한 작품이었는데요, 신작 소식을 듣고 ‘Nutcrusher’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A: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를 말하기 위해선 2017년 12월쯤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서양에서 #metoo가 커다란 사회적 운동으로 자리잡았고 많은 예술, 정치, 교육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각 했는지에 대해 다른 각도로 보고자 하는 운동이 한창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어떤가 하고 뉴스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운동이 잠잠하기만 한지, 분명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렇게 잠잠한 이유는 사회적인 억누름이 그만큼 강해서인가 생각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나기 전 한국에서는 #ㅇㅇ계_내_성폭력 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예술계를 중심으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주로 개인 SNS를 통해 가시화되었고 언론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기사화되지는 않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인터뷰이가 이에 대해 알기 어려웠던 이유다. -편집자 주)
그러다 지난해 1월부터 한국에서도 큰 사회적 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여자라는 존재가 일종의 소모품으로 여겨지거나 대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옥상훈
케이팝 댄스나 광고를 살펴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여자의 몸을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창작을 하면서 첫 번째로 시도한 작업은 케이팝 댄스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여성의 몸에서 여성성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중요시되는 부위인 엉덩이와 긴 생머리의 바운스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앞모습을 보여주면 환상이 깨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무음과 뒤태로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려면 동선과 동작의 구성이 아주 긴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터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게임이나 장기판에 올라간 말들처럼요.
그렇다면 이렇게 구성(Constuction)된 이미지를 어떻게 해체(Deconstruction)할 수 있을까가 다음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 주제를 긍정적으로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의 몸이 무대 위에서 성(性)이 없는 몸으로 다시 태어 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 위에서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Q: 작품 도입부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 중 하나인 긴 머리카락만을 남겨놓고 얼굴과 몸을 검은 옷으로 다 가리고 무대에 서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긴 머리카락은 무용수들이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검은 옷을 벗고, 그 다음은 가슴을 가리고 있던 앞치마를 벗으며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동안 오히려 여성의 머리카락이라기보다 기다란 붓이나 말갈기처럼 저 혼자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으로 변형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 무용수들이 비슷한 머리 길이와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한 것에도 매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정확하게 보셨네요. 일단 무용수를 선택한 첫 번째 조건이 긴 머리카락을 가진 아시아 무용수였습니다. 아시아 여성이었으면 했습니다. 처음 작업의 시작이 사회가 바라보는 아시아 여성(한국여성)이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이었다면 좀처럼 찾기 쉬웠을 텐데 영국에서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생각한 조건이 머리카락이 긴 여성 무용수였습니다. 그래도 쉽지 않았습니다. 작업의 성격상 몸집이 저와 엔칭(Yenching)과 비슷했으면 했고, 갖고 있는 동작을 잘 소화해내면서 창작력 있는 경험 있는 무용수를 원했으니까요. 결국 그리스에 있는 마르타(Martha)가 여러 가지 즉흥작업을 한 영상을 보내준 것을 보고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작업 때문에 일 년 동안 머리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요, 물론 엔칭이나 마르타에게도 손을 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긴 머리는 일반적으로 여성성의 상징이며, 작업에 있어서는 우리의 신체이며 의상이 되기도 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매체가 되어주었습니다. 긴 머리를 한참 보다 보면 무용수들이 머리를 앞으로 하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작품의 중간까지 타이트하게 잡혀 있는 양손과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규제 그리고 여기서 탈출해가는 여정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Q: 이 작품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공연하셨는데, 그동안 축제 무대에 초청되신 공연을 주로 봤었는데 지원금 사업은 혹시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서류 심사와 인터뷰, 쇼케이스, 본 공연까지, 창작자들이 신작을 개발하면서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거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업이지만 해외에 거주하시면서 준비하시기는 어려우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준비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A: 그동안 서울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 위원회에서 작품이 선정되어 국제교류나, 작품 제작에 도움을 받은 경험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지원이 되면 해외에서도 지원이나 협력을 받기가 수월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이번 창작산실은 그야말로 준비에서부터 공연까지 정확하게 일 년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2017년 12월에 작업 구상을 끝내고 2월에 인터뷰 심사를 거처 4월에 20분짜리 시범공연을 올렸고, 올해의 신작으로 최종 결정된 5월부터 무용수 선정, 리허설, 오픈 리허설, 피드백, 프로듀서 선정, 음악, 드라마트루기와 함께 차근차근 한 땀 한 땀 엮어간 작업입니다.
해외에서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제가 거주지를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옮긴 이후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마음에 맞는 무용수를 선정하는 것,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빌리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쉽지 않았으니까요. 결국은 런던 외진 곳에 위치한 교회에서 작업을 해야 했고 그것도 한국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렌트비를 내야 했습니다. 인건비 또한 한국에 비해 두세 배나 더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용수들에게 조건을 걸었지요, 3개월 동안 이 작업 이외에는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 이 작품에 올인하는 무용수들이어야 했습니다. 영국에서 직업무용수들의 인건비는 일주일에 75만 원 정도입니다. 영국에서 마땅한 무용수를 찾지 못해서 그리스 무용수를 선발하게 됐는데, 왕복 비행기 표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인 우리들이 히터도 나오지 않는 장소에서 콘크리트 바닥에서 댄스플로어나 스피커도 없이 작업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잔혹한 강행군이었습니다.
하루는 무용수 한 명이 며칠간 너무 컨디션이 좋지 않고 화가 나 있는 듯이 보여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더니, 몸에서 교회 냄새 나는 게 너무 짜증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날씨도 추운데 몸은 자꾸 얼고 발이 시려서 양말을 벗지 못 하는 게 화가 난다고요. 그래서 좀 더 괜찮은 공간을 찾아 옮겼습니다. 사방 7m 정도 되는 춥고 작은 공간이었지만 적어도 댄스플로어는 있는 곳이라 연습하기가 조금 나아졌습니다. 지원금도 많이 받았는데 왜 이리 궁상스럽게 했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처럼 무용할 수 있는 여건이 좋은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울무용센터에 도착했을 때 저를 포함한 무용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게 감동이었거든요.
제가 작업하는 데 있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달도 분명하게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일단 이미지들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소품들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후, 소품을 모두 제거하고 우리 몸으로 어떻게 소품이 하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강한 이미지들도 모두 버리고 어떻게 몸만으로 이야기를 추상화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습니다. 남들은 한 달이면 끝낼 수 있을 일이 저에게는 석 달이나 걸리더군요. 저는 작업 속도가 빠르지 않은 편이라 일 년에 한 작품도 겨우 소화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한국 시스템에 있어서 저와 맞지 않았던 부분이라면, 지원금에서 일부분이라도 창작자에게 인건비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제도이겠지요, 일 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춤추고, 만들고 하는 과정들이 모두 창작자에게는 취미여야 하나? 그러면 “예술가로써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의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 측정 가능합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답변에서 ‘창작자’는 작품에 참여하는 무용수나 스태프들이 아닌 지원신청서상의 서류에서 단체의 대표로 기재되는 안무가를 가리키며, 이에 대한 인건비 지급 여부는 지원금 사업마다 차이가 있다. -편집자 주)
또 하나는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 작품을 소화해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현 시대의 제도가 다 그렇겠지만 여러 가지를 바쁘게 많이 하는 사람들을 원하는 듯합니다. 일 년에 대여섯 작품을 하면 유능하고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은 무능한 것인지, 이 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Q: 한국사회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할 정도로 활발한 담론이 이루어지고 있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생애주기의 모든 맥락들이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예술작품에서도 여성의 몸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지만 한국에서는 여성 무용가가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하는 작품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넛크러셔(Nutcrusher)>도 여성, 여성의 몸, 여성 무용가라는 맥락들을 떼고 말할 수 없는 작품이고요. 여성 무용가로 이 작품을 만들면서 관객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하신 바는 또 무엇인지요?
A: 공연 전에 네이버 ‘공연 전시’ 코너에 작품이 소개되자 수없이 많은 악플들이 달렸습니다. 그것들을 읽으면서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어떤 반감을 갖고 있는지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 안무가라고 나서기엔 너무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감히 그런 타이틀을 올리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여성이라는 존재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해서 해왔고 앞으로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아져 왔고 보여주기를 바라 왔으며 우리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렇게 그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지를 잠깐 한번 다시 바라보자는 겁니다.
시범 공연에서 제가 검은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춘 부분이 있었습니다. 설명적인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관객에서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었지요, 물론 하는 저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피드백을 주러 왔던 친구 한 명이 묻더군요, 왜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다시 연출하려 하냐고요. 그리고 마스크를 쓴 모습이 특히나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읽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지적은 #metoo 운동을 지켜보며 시작하게 된 이 작업에서 제가 가장 꺼렸던 부분이었습니다.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순간부터 여성은 약자가 되어버리고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게 되니까요.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성과 남성을 가르지 않고 함께 여성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자고 제시할 수 있을지를요.
Q: <넛크러셔(Nutcrusher)>가 아니더라도 허성임이라는 무용가가 보여준 일련의 무대들은 여성과 그 신체, 여성의 신체 에너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여성의 몸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으로,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 남자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이제 만으로 3살이지요. 엄마가 되고 나니 여성과 남성이 얼마나 다른가 하는 걸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존재이지요. 여성으로 사는 우리는 융통성 있고 상황에 쉽게 적응(flexible)하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으며 고통을 참을 수 있고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 줄 아는 강인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강인함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성으로서의 강인함은 사회적으로 많이 부각되지 못 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서양에서도 여성, 특히 아시아 여성은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섹시하고, 순종적이고, 자기의 주장이 강하기보다는 남을 서포트해주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습니다.
ⓒ옥상훈
Q: 2015년작 <님프(Nymf)>에서는 만삭이 다 되어가는 임산부의 몸을 그대로 무대 위에서 보여주기도 하셨어요. 자연인 허성임의 몸과 무대 위에서 춤추는 무용가 허성임의 몸은 어떻게 다른지요? 다르지 않고 같다면, 어떻게 같은지요? 여성의 신체는 출산 전후로 매우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출산 후 부풀었던 몸이 줄어들고 장기의 위치가 변경되는 등의 변화를 겪고 나서 움직임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일단 자연인 허성임은 무대에서도 허성임입니다. 꼼꼼하지 못 하고 덜렁거리며, 너무 깨끗한 것을 싫어하고 어느 정도 허술하고 틈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이 틈이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할 때도 있지만요. 몇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옷을 잘 못 입습니다. 겉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도 싫어하고, 쇼핑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화장은 물론이고 머리도 엉켜 있는 것을 더 편안해하지요. 정갈하고 깔끔한 남편이 이런 모습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정돈되고, 화려하기보다는 미니멀하게 가는 것을 좋아해요. 몇 년 전에 한국에서 공연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정갈한 안무 구성과 엄청난 테크닉을 한 시간 내내 보여주다가 공연 후에 무대에 설치되었던 소품 하나가 삐뚤어졌는데 저는 그제야 조금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공연 끝나고 누가 어떻게 봤냐고 물어봤는데 실수로 삐뚤어진 소품이 제일 좋았다고 했어요. 무대라고 하는 곳은 살아 숨 쉬는 곳이고 우리의 땀과 사람다움이 잘 보여야 하는 곳이지 잘 정리된 최상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허성임이 무대에서도 진실 그대로 보이기를 바랍니다.
출산 전후 몸의 변화라면, 가장 많은 변화를 느끼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스태미나가 줄어 항상 피곤하고 기억력이 감퇴되어 어제 했던 동작이 오늘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랄까요. 간단한 변화에서부터 아이를 많이 안아야 하는 데서 오는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도 신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었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반갑지 않게 찾아오는 산후 우울증과 오랜 시간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없는 영국 땅에서 향수병이 걸릴 정도로 고국이 그립고 가족들이 그리웠습니다.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먹어야 하는 샌드위치빵은 엄마가 해주는 미역국과 비교도 될 수 없었지요. 이런 문화적인 차이들이 한국을 더 그립게 하고 우울증을 더해주었지 싶네요.
Q: 해외에서 생활하신 지 꽤 오래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벨기에는 현대무용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각광받는 곳이고 지금까지 몸담고 계신 니드컴퍼니도 벨기에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무용가로 살기에 벨기에는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혹 외국인으로 살면서는 문화적인 충돌이나 마찰 같은 것이 있는지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현재에는 런던에서 살고 있습니다. 벨기에는 저에게 제2의 홈이고 너무나도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따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춤추기에 최고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작업들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고, 아주 작은 극장에 가도 저마다 철학이 뚜렷한 작가들은 만날 수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예술인에 대한 우대도 대단합니다. 예술인들은 직업 특성상, 일이 없으면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생 한 달에 180~200만 원 정도의 보조를 받을 수 있는데요, 제 친구는 이 보조금으로 집도 장만했다고 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니드컴퍼니 같은 경우 일 년에 나라에서 15억 원의 보조를 5년간 받습니다. 국가에서 예술을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하고 이것을 보호하고 하려는지 알 수 있습니다.
Q: 한국에서 무대를 자주 볼 수 없는 게 항상 서운한데요, 올해는 어떤 공연들을 하시는지 계획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A: 일단 3월에는 프랑스의 릴 오페라단과의 작업이 있을 계획입니다. 오페라는 처음인지라 떨리고 긴장되기도 하는데요. 이번 오페라는 벨기에 현대음악의 대가인 익투스(ICTUS)와 함께 한명의 무용수 및 안무자가 출연하기로 되었습니다. 3월에 벨기에 극단인 아바토와 페르메와 짧은 영화 촬영이 있고, 4월에는 이제 10년째 함께 작업 중인 벨기에 니드컴퍼니와 <이사벨의 방> 공연이 있습니다.
(극단 아바토와 페르메는 허성임의 2015년작 <님프(Nymf)>를 함께 했다. -편집자 주)
그리고 임신 동안 그리고 출산 직후 만들었던 솔로 작업
허성임은 벨기에 무용학교 파츠(P.A.R.T.S)에서 안무자 과정을 졸업한 뒤 얀 파브르, 쎄드라베, 알리아스, 아바토와 페르메, 니드컴퍼니 등과 작업하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8년에는 모다페, 2013년에는 한팩 솔로이스트와 스파프 등에 참여했고 2014년에는 스파프 해외초청작이었던 니드컴퍼니의 <머쉬룸>에 출연했다. 2015년 벨기에 아바토와 페르메 극단과 협업한 <님프>는 춤비평가협회 베스트 작품상을 수상했고 현재 니드컴퍼니 단원으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허성임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