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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의 몸과 춤을 깨닫게 하는 컨퍼런스, DSA 2022 밴쿠버

작년 가을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캐나다 밴쿠버 도심 항구에서 DSA(Dance Studies Association)의 연례 학술회의가 열렸다. DSA는 미국의 춤 연구를 가장 포괄적으로 이끌었던 CORD(Congress on Research in Dance, 1969년 창립)와 SDHS(Society of Dance History Scholars, 1978년 창립)가 2017년에 연합하여 만든 학회이다. 미국 뉴욕주에 등록지를 둔 CORD의 창립연도를 DSA의 역사적 기점으로 삼기 때문에 50년 역사를 넘는다. 미국 국내 학회라 하더라도 실제로는 전세계에 걸친 회원, 연구 소모임들과 연구 현장, 학술지(Journal of Dance Studies), 매년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주요 도시들, 춤 연구 기관들을 돌며 열어 온 국제학술회의들 때문에 연구의 지리적 범역, 연구활동 범역, 회원 구성은 ‘실질적으로’ 국제적이다.


필자에게 이 학술회의의 규모나 연구현장과 회의 현장, 참여자의 범세계적 면모 등등은 한번 살펴볼 사항들일 뿐이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한동안 팬데믹으로 현지조사가 막혔다가 차츰 풀리면서 이 지역 일대의 생태예술과 춤 실행자들을 만나고, 원주민 춤꾼들을 만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2022년 가을 밴쿠버에서 DSA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 그곳에 모인 연구자들과 무용가들도 인터뷰하고, 춤과 몸움직임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살펴볼 겸 참관자로 등록했다.


밴쿠버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학계, 예술계에서 주관한 사전 컨퍼런스(pre-conference) ‘캐나다 춤교육의 탈식민화’를 합쳐 실제 5일 간 약 150개의 세션, 1개의 전시회, 2회의 공연과 수차례의 워크숍 및 퍼포먼스 발표, 3개의 플래너리 세션과 수차례의 학회 행사가 열렸다. 150개의 세션 중에는 매일 아침 4-5개씩 열린 화상회의가 포함된다. 이 중 필자가 시간대에 맞추어 참석 가능한 세션은 하루에 3-4개에 지나지 않았고 전시와 공연 몇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많지 않은 참관 경험 속에서도 날이 갈수록 점점 희열을 느끼면서 보다 가깝게 발표현장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회의가 내건 전체 주제 “춤추듯이 회복탄력성을 다룬다; 글로벌 시대에서의 춤연구와 행동주의(Dancing Resilience: Dance Studies and Activism in a Global Age)”라는 말에서, 특히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에서 내 나름의 평소 바람에 비추어 그 뜻을 새기고 친화력 있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의 어려운 학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보류한다. 생태학, 의학, 심리학, 문화 관련 모든 학문,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회복탄력성은 생명현상의 쇠퇴, 파괴, 트라우마, 문화적 퇴행, 인간과 사회의 좌절 등등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와 공존 공동체의 회복, 균형, 성장 능력을 갖추어 갈 개체와 집단의 유기적 탄성을 뜻한다. 그런데 북미 여러 사회들을 보면 이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무언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개체나 집단을 형용할 때 쓰곤 한다. 예를 들어 밴쿠버에서 근 10년 동안 시민사회에서 성장해 온 ‘바인즈 아트 페스티벌’을 보면 그 땅의 토착민이고 이제는 자기 땅에서 소외되고 주변화 되어버린 원주민들에서 나온 예술가들을 ‘resilient artist’라 한다. 본래의 대지 속 뿌리내림의 존재이며 고난을 겪고 다시 스스로를 재생시켜 회복하는 예술가라는 뜻이다.


또 이 축제에서는 생태계의 파괴를 딛고 다시 자연과 인간의 공존적 관계를 자기 정체성으로 인식하면서 그 실질적 관계 회복을 위한 예술 개입을 하는 생태예술이 행해진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인간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일어나는 식민화, 인종주의, 여성 차별, 인권 탄압, 동성애 탄압에 저항하고 탈식민화와 평등과 공생의 사회관계를 정립하고자 하는 예술행위들이 벌어진다. 이러한 예술행위들은 모두 회복탄력성, 이 시대까지의 모든 질곡들 뚫고 뿌리로부터 새로운 싹을 틔울 회복탄력성의 힘 행사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래서 축제의 초두와 말미에 힘을 나누기 위한 원주민 의례와 시더나무 향을 쐬기, 몸의 시더나무 씻김 등이 행해진다. 재생과 회복력을 위환 의례이다,


DSA 밴쿠버 회의에서는 놀랍게도 거의 모든 세션들이 회복탄력성과 몸, 회복탄력성과 춤, 그리고 실천행동을 바탕 주제로 깔고 있었다. 밴쿠버에서 DSA 컨퍼런스 전체 주제를 이렇게 정한 것도 밴쿠버가 원주민의 탈식민화, 이주민의 문화다양성 회복과 존중, 자연과 인간의 공존 관계 회복과 생태학적 실천의 도시로, 기후변동과 위기사회의 극복을 위한 사회생태적 운동과 실천의 도시로 자리매김 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플레너리 세션들에서는 원주민 여성 원로이자 무용가들이 발표자로 초빙되었고 몸으로, 춤으로 자기 존재를, 식민화되었던 존재를 어떻게 극복하고 세계관을 정립했는가를 말한다. 문화가 지역화 되어야 한다는 주제의 세션에서는 그 지역화의 요체가 그 지역 뿌리로부터의 재생화 회복에 있다고 말한다. 젊은 원주민 여성 무용가가 자기 땅에서 몸으로 자기 자연과 인간 존재를 정의하고, 존재의 탈식민화를 실천하는 원주민 전통의 현대무용을 창출해 왔는가를 말한다. 인도 무용의 여성 원로가 맞상대가 되어 인도 문화에서의 춤이 갖는 생명력과 사회적 회복력을 이야기하고 상이한 민족집단들 간 지혜를 공유한다. 마지막 플레너리 세션에서는 영국에서 발생시킨 도시공간 걷기, 장소 깨달음과 감각적 접촉을 통한 심리적, 사회적 재생 사례가 이야기되고 LA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가가 그 걷기 퍼포먼스를 가르쳤다.

 

오델라 아츠(O.Dela Arts)의 원주민 춤 공연 <모계가 일어서다>

 

본격적인 개별 세션들에서는 미세하고 전문적인 내용들이 발표되었다. 100개가 훨씬 넘는, 엄청나게 다양한 춤 연구 세부 분야의 세션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민초와 함께, 사회적이고 공존적으로, 이 인간 사회를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생태학적 세계를 회복하고 생명력을 재생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학술적 분석, 해석의 아카데미즘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술이 그리고 그 실천으로서의 예술이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한 인식, 감성, 사회조직, 실행이 어떻게 체계화되어야 할지를 논하고 그 자리에서 실행조직을 구성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온라인 세션 하나에서는 오늘날 춤 연구와 실천을 비롯한 모든 인문사회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기후변동, 생태적 파괴, 인류세(anthropocene)에 대응하는 자연-인간의 공존적, 상호 교류적 관계 회복을 다루었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발표를 한 중국계 박사후보생 멩황 우는 인간과 비인간(more-than-human)의 관계 중 인간이 만든 사물들과의 관계를 대상으로 요즈음 주요한 인간의 인식 시각으로 대두되는 대상지향적 시각(object-oriented perspective)을 추적했다. 그녀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 <카페 뮐러>에서 나타난 소외 문제를 대상물을 통한 인식 시각 추적으로 해석했다. 인간과 비인간 관계는 자연물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물과 인간 사이에도 성립하는데 그 관계를 그 대상 사물을 통한 시각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고 사례로서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를 이야기한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심리적 질곡을 겪고 자기 존재의 회복을 위해 몸 실천을 해온 사람들의 대표적 세션은 북미, 유럽, 아프리카에서 미시적 관계 조직화와 관계 인식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 온 춤 연구자, 무용가, 춤 교육자들의 회의였다. 거의 자기 경험 진술과 실천 방안 발표, 그리고 즉석 워크숍과 조직화, 차기 년도의 회의 계획이 자유롭게 논의되는 라운드테이블 같은 것이었다. 영국 한 소도시에서 온 20대 초반의 여성 발표자는 자폐로 인한 사회성의 상실과 불안, 좌절, 자기 비하를 몸을 통한 대인 기피 극복과 자기 존재 회복으로 해결했음을 이야기했다. 평소에 몸으로 교신하는 것으로 이겨나갔음을 정작 발표장에서 말로 이야기하는데 힘이 든 나머지 발표가 끝나고 그 세션 마지막까지 한 구석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활성화하면서 결론을 끌어간 것은 미시적 소통과 교류, 조직화를 위한 차기 회의 계획이었다. 말레이시아 페낭 지방 출신 쉐니 란은 20대 후반의 춤연구자이고 기획자이다. 그녀는 이 세션에서 미시적 몸 교류에 대한 실천적 연구조직에 관한 토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고 있었는데 필자는 이 회의 덕분에 그녀로부터 광범하게 퍼져 있는 미시적 몸 경험, 몸 교류, 몸 인식 실천 집단들과 동향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밴쿠버 스코티아 댄스 센터에서 저널 편집을 하고 있는 그녀와 몇 차례 인터뷰를 하면서 점차 이 미시적 몸 경험 인식과 실천 집단들에 대한 필자의 현장연구 계획을 자문 받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례들은 작품의 내적 구성요소와 연행에 국한된 연구대상을 뛰어 넘어 춤의 내적, 공연예술적 요소들이 자연, 사회, 문화적 맥락들과 통합되어 있는 세계를 말해준다. 몸동작의 이미지와 기술에만 시야가 돌아가는 강박을 벗어나 넓은 생태적, 사회문화적 세계가 춤으로 구현되는 바를 깨닫게 하는, 춤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연결, 재연결의 주제를 깨닫게 하는 참조 지점들을 말해준다. 밴쿠버의 DSA 컨퍼런스는 학술과 예술과 생생한 삶의 현장, 회복탄력성의 현장을 이야기하고 단순 관객이 아니라 예술행위와 학술행위를 통해 직접 그 세계에 개입하는 사례들을 말해주고 있다. 



글_ 조경만(목포대 명예교수)

사진출처_ DSA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