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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1)

이 글은 한국 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공모한 ‘2022년 장애예술 연구 지원 사업’에 선정된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 것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Ⅰ. 서론


2021년 6월 제11회 대한민국 발레축제 참가작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 발레의 거장’인 존 크랑코가 안무한 2막짜리 발레극 <말괄량이 길들이기>(국립발레단)가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가 된 장면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중 천방지축 카테리나와 결혼한 페트루키오가 아내를 길들이고자 하인들을 시켜 뇌성마비, 뇌 병변 환자 등 지체장애인 흉내를 내며 괴롭히는 안무다. 존 크랑코 재단은 한국에서의 (장애인 비하) 논란을 이해하고 안무를 변경했다. 존 크랑코의 3대 드라마 발레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장애인 당사자(장애인 부모)의 항의로 장애인 비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변경한 것은 최근 서구 예술계가 점차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전통 예술 중에는 장애인 비하에 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 여전히 남아있다. 탈춤과 세시 민속놀이 등 전통 민속 연희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이른바 ‘병신춤’으로 부르는 장애인 모방춤을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연희한다. 탈춤의 ‘문둥 춤’ ‘문둥 북춤’ ‘꼽추춤’이 있고,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밀양 백중놀이의 춤판을 “난쟁이, 중풍장이, 배불뚝이, 꼬부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익살스러운 병신춤을 춘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전통 춤 계의 장애인 모방춤에 관한 인식의 단면을 살펴보자. 채희완은 <전통 두레의 현재적 의미>라는 강연에서 ‘병신춤은 비인간적인 춤인가’를 주제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병신춤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병신 흉내를 내어서 추는 춤으로, 춤 내용으로 보아 ‘제대로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의 춤’,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는 춤’, ‘춤출 수 없는 몸을 거두어 춤을 추어 몸의 굴레를 벗어난 육체해방을 꿈꾸는 춤’, ‘사지는 멀쩡하나 모두가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 폭로하듯이 추는 비판적 측면이 있다.” “병신춤에는 춤출 수 없는 사람도 같이 어울려서 놀자는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결코 신체장애자를 모멸하기 위한 춤이 아니다.” (채희완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도서출판 전망, 2013년, pp.177-178.) 이런 해석은 장애인도 원하고,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을 갖게 해 장애인을 모방한 춤을 대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관객에게 윤리적 명분을 제공한다. 채희완의 병신춤 해석을 전통춤 계의 일반적인 입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해석 이외에 다른 입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밀양 백중놀이 중 춤판은 일명 ‘병세이 굿’으로 불리며 행사의 가장 중심이었다. 1970년대 밀양 교육청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금지했고, 밀양시 북쪽에 있던 한센인환자촌 사람들이 백중놀이 전수회관을 습격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현재 백중놀이에서 장애인 모방 춤들이 약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수되고 있고, 이에 관한 비판적 논의는 전무하다.  


동시대(contemporary) 춤은 움직임의 ‘평등’을 추구한다. 춤추는 몸이 따로 존재한다는 모더니즘 댄스의 입장의 정당성에 관한 의문에서 출발한 이러한 개념은 춤을 반복 가능한 것으로 붙들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 안무(choreography)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장애를 불능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바뀌지 않는 전통 춤계가 본 연구가 제시하는 담론을 시작으로 동시대의 인권 의식을 긍정하고 예술적 확장까지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Ⅱ. 본론



1. 선행 연구


전통 민속 연희 속 장애인 등장인물, 장애인 모방 춤과 관련한 연구는 많지 않다. 소수의 관련 연구는 주로 비장애인 시각에서 이루어지면서 논의 확산이나 새로운 연구 시도를 찾을 수 없다. 이화진의 박사학위 논문 「장자(莊子) 사상에서 본 범부춤과 병신춤 심미 구조에 관한 연구 -하보경과 공옥진을 중심으로」(2010,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예술철학)는 “병신춤은 비록 외형적으로는 불구자를 모방한 춤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병신춤은 지배층들에 대한 반항과 애환이 담긴 감정을 외형적인 불구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내면에 깔린 시비․ 차별․ 모순 등의 상반된 감정을 없애고자 하였다. 따라서 병신춤은 현실의 부자유와 갈등 속에 담긴 피지배층들과 지배층들과의 부조화(不調和)와 갈등을 없애는 덕의 미학이 내재하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화진은 ‘병신’인 장애인을 몸과 마음의 부조화를 가진 존재로 규정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부조화에 ‘덕의 미학’이 내재한 것으로까지 본다. 이는 장애인을 철저히 타자화한 관점이다.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일상적으로 겪는 배제와 소외 그리고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고, 그것을 ‘덕’이나 ‘미학’의 개념으로 미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층에 대한 반항과 애환을 장애인의 모습에 투영하는 것도 장애인을 도구적 시각에서 대상화한 것에 불과하다.


김경미의 석사학위 논문 「병신춤의 민중적 미의식 연구 –밀양백중놀이를 중심으로」(1999, 부산대학교 대학원 체육학)에서도 “병신춤은 신체장애자 등 춤을 출 수 없는 신체적 불구자가 추는 춤이자 완전한 형체를 갖추지 못하거나 제구실하지 못하는 의미의 정신적·사회적 병신까지 포괄하는 춤이다. 이처럼 모방 춤이자 장기 춤의 하나로 즉흥적이면서도 희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춤사위 속에는 인생의 불행과 고독, 그리고 절망이 짙게 깔려 풍자와 비판의식이 드러난다.”라고 주장한다.


장애인을 불행하고 고독한 존재로 보고, 그것을 통해 세태 풍자와 비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춤을 출 수 없는 신체적 불구자’라는 표현에는 춤출 수 있는 몸이 따로 있다는 의미로 취미와 신명의 표출로 춤추는 행위조차 장애인은 할 수 없다는 편견이 깔려있다.


이남영은(2007. 『우리 춤 철학 입히기 –춤·신명 카타르시스 비교론』. 도서출판 문사철) “타자 영역에 있을 수밖에 없는 병신이 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판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병신은 세상의 기운과 잘못된 관계 때문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 삶의 운명은 슬프면서도, 강한 의지를 갖춰야 삶을 살아나가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런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어긋난 관계 때문에 태어난 사람들의 춤은 경험자로서 오히려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396쪽)라고 분석한다. 이남영은 장애를 운명과 연결 지으면서 장애가 인간 삶의 여러 조건 중 하나이고, 어떤 인간도 운명적으로 특정한 상황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사고조차 비껴가고 있다. 장애를 운명과 연관 짓는 생각은 장애 인식 가운데 가장 위험한 시각이다. 장애가 운명적이기에 장애인은 죽을 때까지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종교적으로는 장애가 전생의 업보이거나 신의 의지로 고난을 주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탈춤 등 민속 연희에서 양반을 각종 병신으로 설정한 것은 양반의 무능력함이나 부도덕함을 풍자하기 위해서다. 민중은 양반을 병신으로 만들어 조롱하고 희화화해 사회적 약자인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런 점이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해도 장애인에 관한 부정적 시각을 내포한다는 사실은 묵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연구의 한계는 장애를 운명적 불행으로 보거나, 장애인의 몸을 춤출 수 없는 몸으로 생각하며, 부조화, 고난, 불행, 고독, 절망과 장애인을 연결하고 있다. 이는 장애를 철저히 타자화한 시각으로 장애인 당사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2. 장애인 당사자성


장애를 정의하는 문제는 수없이 많은 현실 상황에서 나타나며, 사회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 장애는 의학적 정의와 진단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과정 속에서 같은 범주로 명명되기도 하고 특정한 억압과 폭력의 경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또한 사회 여러 영역에서 특정한 몸을 포섭하거나 밀쳐 내는 동력을 만드는 담론으로 작동한다. 장애인은 이러한 억압과 폭력, 배제와 차별의 대상으로서 정치적, 문화적 경험을 체화하는 존재다. 이는 비장애인이 절대 경험할 수 없다. 장애인 당사자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수동적 존재로 남기를 강요하는 현실, 사회체제의 부당한 면을 바라보는 위치,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끊임없이 점검 당하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관점이 장애인 당사자성이다. 당사자성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동정, 봉사, 극복의 시각과 대척점에 있으며, 장애인에 관한 기존의 사회 인식에 균열을 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출처_ 국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