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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2)

이 글은 한국 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공모한 ‘2022년 장애예술 연구 지원 사업’에 선정된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 것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3. 대리 치유(cure by proxy, 대리인을 통한 치유)


김은경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후마니티스, 2022)에서 대리치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Titchkosky​1)는 서구 맥락에서 “인간됨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장애화한 몸을 관찰하면서, 장애가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한계점”으로 간주하는데, “장애가 인간으로 여겨지는 기준의 한계점과 최극단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면, 그 생명력이 박탈되며, 장애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도 은폐된다.” Titchkosky는 예를 들어 시각장애가 세상을 다르게 인지하는 상태가 아니라 보지 못하는 상태로만 이해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 장애화한 몸은 단지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한계점”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변화되기를 기다리는 상태로 여겨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장애 경험의 관계적이고 젠더화된 양상은 비장애 가족 구성원들이 치유 행위자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데, 이들의 행동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장애에 영향을 끼친다. 나는 이런 행위자를 치유를 위한 대리인(proxy for cure)으로 부른다. 대리인을 통한 치유(혹은 대리 치유, cure by proxy)는 비장애 가족의 행동에 따라 장애인의 치유가 결정되는 의존의 조건을 형성한다. (…) 대리인은 장애인의 욕구를 대변하기보다 강제적 정상성(compulsory normality)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 부여하며, 이와 동시에 장애인을 이러한 노력의 보상을 받게 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든다. 대리 치유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장애인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행위성과 주체성이 자신을 대표하고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을 상정한다면, 대리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런 행위성과 주체성에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2)

장애인 가족이 치유의 대리인이 되는 대리 치유 논리를 전통 민속 연희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대리 치유는 장애를 ‘정상’을 기준으로 극복해야 할 상황으로 본다. 완전한 정상까지는 아니라도 정상에 가능한 가까운 상태를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이루는 것은 장애인 자신이 아니라 대리인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한계점”에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됨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장애화한 몸은 타자가 치유하지 않으면 정상성 시스템에 들어 올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채희완의 병신춤에 관한 해석은 대리 치유 논리가 가족을 넘어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족의 대리 치유는 가족이 희생하고 가족을 고립시키는 데 반해 확대한 대리 치유는 희생자가 없는 상태에서 장애인의 몸을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이 투영된 상태로 보고 이를 희화화하고 소외시킨다. 나아가 이런 과정에서 장애인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철저하게 도구화될 뿐이다.



4. 전통 민속연희 속 장애인


1) 탈춤 속 장애인 등장인물과 역할

탈춤은 장애인에 관한 민중의 인식을 언어, 탈의 형상, 몸짓까지 다각도로 보여준다. 탈춤에 등장하는 장애인 캐릭터는 문둥이(한센병), 꼽추, 언청이, 곰보, 절름발이, 째기(얼굴이 심하게 삐뚤어진 인물) 등이다. 탈춤에서는 주로 양반을 ‘병신’으로 설정한다. 이는 양반의 무능력과 부도덕을 풍자하기 위해서다. 즉, 양반을 병신으로 조롱하고 희화화함으로써, 자신이 사회적 약자이기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는 우월감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이다. 여기서 건강한 신체는 정신적, 도덕적 건강을 뜻하는데, 양반을 병신으로 조롱하는 데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포함되었다. 다시 말해 양반과 병신을 일체화함으로써 장애인도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과장에 나오는 양반 삼형제(첫째 샌님, 둘째 서방님, 셋째 도련님)은 모두 장애인이다. 첫째는 쌍언청이고, 둘째는 언청이, 막내는 입비뚤이다. <통영오광대> 양반은 얼굴 한쪽이 변색하였거나(홍백), 곰보이거나, 얼굴이 심하게 틀어져 있고, 문둥이양반까지 있다. 이들은 조상의 죄업으로 문둥이가 되었다는 설정인데, 장애를 죄의 대가, 운명적인 업보로 여기는 것으로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진주오광대>에도 문둥이 과장이 있는데, 문둥이 또는 어딩이라고 하는 장애인 등장인물이 나와 비정상적인 몸짓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장면은 모든 오광대에 있어, 오방신장무와 문둥이 과장은 오광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가산오광대> 문둥이는 다른 오광대와 달리 문둥이의 신분이 양반이 아니다. <가산오광대>의 문둥이는 시끄럽고 비열하며 부도덕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표현에는 문둥이(병신)로 대표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갱생이 불가능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살펴본 것처럼 오광대의 대표적인 장애인 캐릭터인 문둥이는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표현한다. 이들 중 통영과 고성, 진주의 문둥이에게서 대리 치유 논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세 지역에서는 문둥이가 혼자 나와 독무를 추는데, 처음에는 불치의 병을 앓은 비애를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표현하다가 점차 활기를 띠면서 내면의 신명을 표출한다. 비장애인 춤꾼이 춤출 수 없는 몸을 가진 장애인을 대신해서 춤을 추어 육체의 해방을 꿈꾸게 한다는 채희완의 해석이 적용되는 부분이다. 


2) 민속놀이 속 장애인

밀양 지방은 반상의 차별이 대단히 심한 곳이었다고 한다. 양반은 잡동사니 패거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상놈을 무시하였다. 이런 이유로 밀양 지방에서 유독 양반을 풍자·비판하는 놀이가 발달하였다.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경 용 날을 선택하여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를 말한다. 춤판은 양반춤으로 시작하는데 장단에 맞추어 양반답게 느릿하게 추고 있으면, 머슴들이 양반을 몰아내고 난쟁이, 중풍장이, 배불뚝이, 꼬부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병신춤을 춘다. 밀양 백중놀이의 특징은 상민과 천민들의 한이 전체 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밀양백중놀이의 병신춤은 놀이의 중심이어서 ‘병세이굿(병신굿)’으로 불리기도 했고,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까지 ‘밀양병신굿놀이’로 경남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지금의 <밀양백중놀이>는 ‘밀양병신굿놀이’의 개칭이다. 놀이의 이름부터 노골적으로 장애인 비하가 담겨있었다.

 

북청사자놀이- 곱추춤(전경욱, _북청사자놀이연구_ 태학사, 1997.)

 


5. 전통 민속춤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


탈춤과 민속 연희가 억눌린 민중의 숨통을 잠시나마 틔우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 민중은 지배층을 비하하고 조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낮다고 여기는 계층, 즉 그들이 얕잡아 보아도 반발할 수 없는 대상을 끌어들이면서, 지배층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민중을 소외시켰다. 이 장에서는 탈춤과 민속놀이에서 장애인을 어떤 관점으로 다루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1) 풍자와 비판의 도구

‘풍자(諷刺; Satire)’는 라틴어 ‘lanx satura(가득 담긴 접시)’에서 유래했다. 구세대나 불합리한 권력을 공격하기 위한 문학적 표현으로, 대상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깔려있다. 대상의 허구를 폭로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방법보다 조소, 경멸, 모욕 등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권력자나 지배층이 주 대상인데, 그들이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풍자의 주체는 대상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해야 한다. 풍자에는 대상을 희화화한 웃음이 필수다. 웃음은 권위를 무너트리는 손쉬운 도구다. 탈춤과 민속 연희에서 기득권층의 권위를 무너트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는 장애인(장애화 한 몸)이다.


탈춤과 민속 연희에서 장애는 양반이나 파계승 같은 지배·기득권층을 비판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장애인의 몸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정상과 대비하면서, 장애를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하고, 부정적인 상태로 고착화한다. 결국 비장애를 비하해 ‘정상’을 강조하고, 그 정상은 기득권층이 아닌 민중인 자신들이라고 자위한다. 그런데 탈춤과 민속 연희에서 장애는 양반이나 파계승 같은 지배·기득권층을 비판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장애인의 몸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정상과 대비하면서, 장애를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하고, 부정적인 상태로 고착화한다. 결국 비장애를 비하해 ‘정상’을 강조하고, 그 정상은 기득권층이 아닌 민중인 자신들이라고 자위한다. 관객은 당연한 듯 장애인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다. 장애로 인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움직임과 표정은 누구를 웃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탈춤과 민속 연희에서는 이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거기에 더해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는 춤’ ‘춤출 수 없는 몸을 거두어 춤을 추어 몸의 굴레를 벗어난 육체 해방을 꿈꾸는 춤’ ‘병신춤에는 춤출 수 없는 사람도 같이 어울려서 놀자는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라는 해석을 붙여 그나마 조금 보이는 장애인 비하에 관한 비평적 시각을 무마하고 있다.   


2) 유희적 대상화(타자화)

대상화의 정확한 의미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가능한 한 넓게 정의하자면,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인간성이 사라지고 사물이나 대상, 물건의 형태로 재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화, 사물화라고도 한다. 사물화라는 단어는 때로 철학의 물신화(reification)를 의미하기도 하며, 타자화라는 단어는 ‘우리-그들 구분법’에서 우리가 아닌 존재로 취급함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대상화를 성적 대상화로 전용해서 사용하는 것에 착안해 전통 민속 연희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을 ‘유희적 대상화’로 명명하였다. ‘유희적 대상화’는 장애인의 삶에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소외와 배제, 멸시를 무시하고, 단지 웃음을 유발하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장애로 인한 부자연스러움을 부각하는 것을 뜻한다.


Michael Bakhtine(최진석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그린비, 2019, 110쪽)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 안에 머물며, 우리 자신의 반영만 볼 뿐이고, 이 반영은 우리가 세계를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의 직접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외양이 반영된 상은 보지만, 외양 속에 있는 자신은 보지 못한다. 외양은 나의 모든 것을 포함하지 못하며, 따라서 나는 거울 앞에 있는 것이지 그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내면과 외면의 분리를 이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타자다. 타자는 나와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지만 나를 넘어선 존재다. ‘타자화’는 나와 다른 것을 대상화하며 나와 분리하는 것이다. 정의상 타자는 ‘나-주체’가 아닌 자, 나의 외부, 바깥의 존재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타자는 아마 나-주체에 의해 어떤 식으로도 포착될 수 없는 전적인 외부이다. 하지만 타자는 또한 나에 ‘대한’ 타자이다. 유한한 주체인 나를 완전히 벗어나는 타자는 무(無)와 다르지 않다. 나의 경계는 신체의 끝이며 이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신체의 경계에 갇힌 나의 결여는 타자로부터 보충한다. 나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도 타자이고, 내 얼굴을 통해 나를 자각하게 해 주는 자도 타자다. 그러니 타자화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타자화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Emmanuel Levinas(『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1996, 7쪽)는 주체성을 ‘타인을 받아들임’ 또는 ‘타인을 대신하는 삶’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내 존재는 동일성에 갇혀있고,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타자로 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자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자는 내 존재를 온전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전통 민속 연희에서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것은 Bakhtine이나 Levinas가 말한 타자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장애인을 기득권층 비판에 이용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 민속 연희에서 타자는 ‘유희적 대상화’로서의 타자이다. 극을 통해 장애인을 대상화하면서 타자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권력을 얻었다고 착각하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왜곡된 시각을 드러낸다. 또한 장애를 차별하는 것으로 손쉽게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복잡한 판단 없는 단순 명료한 이분법적 서사는 민중이 즐기기에 적합했다. 이러한 몇 가지 면에서 한국 전통 민속 연희가 장애를 이용했을 것이다. 이런 왜곡이 일어나는 이유는 장애인 당사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강화된 합리화

병신춤의 유래를 설명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장애인 모방 춤인 병신춤이 등장한 배경에 계층 간 반목이 심했던 시대 상황과 전염병의 만연으로 질병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장애인 모방(춤)이 결국 대중이 즐기는 오락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인 모방을 하나의 연희 형식으로만 여기는 시각에서의 분석으로,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합리화이다. 시대 상황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장애인을 비하한 풍자와 웃음이 하나의 예술적 표현 도구가 되었다는 의견에는 도구가 된 장애인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비장애인 입장의 합리화는 시간이 흘러 앞에서 살펴본 대리 치유 논리로 더욱 합리화한다. 여기서 비장애인 입장의 합리화가 정점에 이른다. 장애인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스스로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비장애인의 동정과 의지가 개입해야 장애인 삶이 그나마 사회 모순을 반영하는 도구로 이용할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_ 이상헌(춤평론가)


1) Tanya Titchkosky(1966-), 사회학자, 뉴욕대학교 교수.

2) 김은경, 139-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