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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공간CEO로 거듭난 전통무용가 출신 국립정동극장 정성숙 대표이사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정성숙(사진제공_ 국립정동극장)

 


50년 만에 돌아온 정동길에서 근대문화의 부활을 꿈꾸다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로 취임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제가 예원학교 1회 졸업생이고 서울예고 출신이라서 정동길을 6년이나 다녔어요. 50년이 지나서 다시 왔으니 감회가 남다르지요. 작년 11월 2일에 취임했는데, 정동길에 늘어선 노란색 은행나무가 주는 환상적인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 1주에 한 번씩 예배드리러 가던 정동교회도 그대로 있고, 공연을 보러 다니던 경향신문사 건물(구 MBC 정동사옥)도 반가웠어요.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는 듯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러시아공사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빨간 벽돌은 또 어떻고요. 예나 지금이나 빨간 벽돌과 노란 낙엽이 어우러진 정동길은 고풍스럽고 기품이 넘치는 곳이에요. (재)전통공연진흥재단에서 이사장으로 근무해서인지 경영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공공극장이기 때문에 운영의 폭이 넓어졌지만, 예술경영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고 재밌는 일거리가 많아서 예술행정가로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정동을 “고풍스럽고 기품이 있는 곳”이라고 강조하셨는데, 대표님의 극장 운영 방향이 혹시 그쪽에 있는지요?

맞습니다. 정동에는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들이 몰려있었던 외교 단지였어요.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고, 호텔 안에는 공사관원들과 조선인들의 친교 공간인 클럽하우스 정동구락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가톨릭, 러시아 정교회, 성공회 등 해외에서 유입된 종교들의 선교기지였으며, 선교사들이 서양식 교육과 의료를 펼치던 곳이기도 해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이라는 아픔을 겪었으나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자주 근대화의 꿈을 키운 곳도 정동입니다. 국립정동극장은 정동의 이러한 역사문화적 배경과 우리나라 근대문화의 발원지라는 장소성을 풀어내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12월에 근대시기를 소재로 하는 <딜쿠샤>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정동의 근대문화유산과 장소성을 스토리텔링하는 레퍼토리를 한 가지씩 순차적으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딜쿠샤>라는 작품을 좀 더 설명해주시죠.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1917년에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인 메리 테일러 부부가 지은 붉은 벽돌집의 이름입니다.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일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에 3.1. 만세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던 분인데, 1940년에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추방됩니다. <딜쿠샤>는 앨버트와 메리 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마지막 생애를 보내며 딜쿠샤로 찾아와서 그곳에 머물던 사람들의 백년 간의 삶을 편지 형식으로 그려본다는 내용입니다. 작년 12월에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창작ing’를 통해 개발된 뮤지컬 작품인데,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올해 12월 7일부터 30일까지 공연될 것입니다.

 

뮤지컬 <딜쿠샤>의 공연 장면(사진제공_ 국립정동극장)

 

 

예술가와 국민이 모두 행복한 창제작극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



2021년 국립공간으로 재개관한 이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국립정동극장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뚜렷이 각인되지 않습니다. 극장의 정체성에 대한 대표님의 비전은 무엇인지요?

1995년에 문을 연 정동극장은 판소리, 민속춤 등 전통연희를 주로 공연하였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따라서 원각사의 근현대 예술정신을 계승하는 문화공간이라는 정통성이 중요하겠지요. 우선, 예술극장으로서 국립정동극장은 전통예술을 계승하고 오늘날의 공연예술을 조화롭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소임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공공극장으로서 국립정동극장은 국민에게 도심 속 문화쉼터의 역할을 하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합니다. 저는 취임하면서 “미래를 향한 쉼 없는 도약”을 국립정동극장의 모토로 설정했습니다. 그 아래 ▶국민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국민의 문화쉼터 ▶건강한 공연예술 생태계 조성 ▶사람 중심 경영을 통한 전문성, 역량강화라는 3대 목표를 세웠고, ①극장 위상 제고 ②우수공연을 통한 극장 본연의 가치 증대 ③공연생태계 발전 견인 ④국립 공공극장 역할 강화 ⑤국립정동극장 예술단 활성화라는 5개의 추진안을 만들었습니다. 


극장이 재건축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립정동극장은 재건축을 통해 국민과 예술가들에게 더욱 친화적인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올해 국립정동극장에 올리는 모든 공연이 재건축 전에 보게 될 마지막 무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관객과 예술가들에게 의미가 클 것입니다. 그래서 공간마다 특별공연을 추진해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 계획입니다. 또한, 그 동안의 국립정동극장 활동 및 공간을 아카이빙하여 재건축 후에도 현재의 공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록화 사업을 추진할 것입니다. 


지난달 11일에 기자간담회를 하고 ‘2023 정동시즌’을 발표하셨는데,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국립정동극장 2023년 공연의 라인업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올해는 역대로 가장 많은 작품을 공연하게 될 것입니다. 세실극장에서 14편, 정동극장에서 15편, 총 29개의 작품이 선보이게 됩니다. 자체 창제작으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올리는 공공기관은 없을 것입니다. 작년 7월부터 국립정동극장이 창작연극의 메카였다가 폐관 위기에 놓였던 세실극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작 터전이었던 세실극장 덕분에 국립정동극장이 공연생태계의 창작활성화에 견인차 구실을 하게 되었지요. 세실극장의 ‘창작ing’는 발전 가능성이 큰 작품을 발굴하여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육성, 지원, 유통까지 책임지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통해 국립정동극장이 2차 제작극장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창작단계의 작품을 지원하는 극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실극장이 유일하지요. 작년 12월에 개최된 ‘창작ing’ 공모에는 뮤지컬, 연극, 춤, 전통 분야에서 182개 작품이 참가했습니다. 23:1이라는 경쟁을 뚫고 연극 3편, 뮤지컬 3편, 무용 2편, 전통 2편이 선정되었습니다.



국립정동극장으로 무용계의 시선을 모은다



‘2023 정동시즌’에서 주목할 만한 무용공연은 무엇입니까? 

우선 세실극장의 ‘창작ing’에 선발된 두 작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5월 7일부터 11일까지 공연되는 조현상(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안무가의 작품 <웃음을 잃지 마세요>(원작: 두개의 혀)와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공연되는 조재혁 안무가의 한국창작춤 <돌>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획공연인데, 한국창작춤의 선구자인 김매자, 배정혜, 국수호 세 분을 초청하여 정동극장에서 8월에 올리는 ‘한 여름밤의 창작춤’도 주목할 만합니다. 정동이 문화관광지로 유명한 만큼 국립정동극장은 일반 대중이나 외국인 관람객들을 위한 전통공연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세실풍류-춤꾼들의 이야기’입니다. 6월 한 달 동안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열리는 ‘세실풍류’는 국립정동극장이 처음 마련한 전통예술무대입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덕수궁의 야경을 배경으로 원로에서부터 신진들이 깊은 호흡으로 펼치는 전통 춤사위가 멋지게 만개할 것입니다. 그 외 정동마루와 정동야외마당을 활용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으며, 전통공연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4월 11일-19일)에는 유선후 선생님이 안무가로 참여하며, 뮤지컬 <뽈라테로>(5월 18일-6월 2일)와 <안테모사>(11월 12일-22일)에는 한선천 안무가의 협력이 있으니 무용가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정동마루(사진_ 국립정동극장 홈페이지)

 

국립정동예술단의 지도위원이 무용가이기 때문에 무용계에서 기대하는 바가 많습니다. 예술단에서 무용수의 비중은 어떻게 됩니까?

예, 안무가 이규운 선생님이 지도위원으로 계시지요. 그렇지만 국립정동예술단은 전통연희를 표방하는 단체입니다. 연희는 판굿, 춤, 음악 등 모든 전통예술을 아우르는 표현이지요. 예술단 단원들의 대부분은 2000년에 상설공연 <미소>를 위해 선발했던 분들로 무용과 타악 전공자들이 두루 섞여 있습니다. 작품에 따라서 외부 창작가와 협업하는데, 올해 예술단은 두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정기공연은 <춘향>(5월 18일-20일)으로 이규운 지도위원이 연희감독 안대희(연희집단 The광대)와 뮤지컬 연출가 노우성과 협력하여 세련된 전통연희로 색다른 캐릭터의 춘향을 보여 줄 것입니다. 하반기 정기공연으로는 대중문화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남사당패의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 바우덕이를 소재로 하는 <어릿광대>(11월 23일-25일)가 준비되는데, 이현주 안무가를 초빙하였습니다. 이 작품에는 실감콘텐츠를 도입하여 동시대의 소통을 넘어 미래의 전통연희가 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술단의 안정적인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서는 단원들의 전문성 강화와 창작역량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문가 초청 특강을 통해 예술단원들의 역량 강화를 도모하고, ‘바운스’라는 창작플랫폼을 통해 단원들이 창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예술행정전문가로 나서게 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이신데, 이제는 전통무용가보다는 예술행정전문가로서 더 알려졌지요?

2018년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개인발표회를 1년에 1회씩 갖는 전통무용가로 꾸준히 활동하면서 무용과 출신들은 왜 무용단 단원이나 예술감독 또는 교수 밖에 갈 길이 없는가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지요. 예술행정가로 나서게 된 계기는 2012년에 유행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강남에서 전통춤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얻으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강남을 많이 찾아왔어요. 그때 강남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전통이라고 생각했고, 강남구립전통예술단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구의회를 찾아다니며 전문직업예술단으로 추진했고, 예상외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어요. 2013년에 공개 공모를 통해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어 4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일당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예술단을 운영하였는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술행정가로서의 역량이 많이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행정 역량을 키워서인지 (재)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의 업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사장으로 선임된 지 3개월 만에 모든 자료를 읽고 무엇을 할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는 직원들과 창작거점화, 홍보강화, 역량강화라는 3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특히 창작거점이 전통공연예술재단의 숙원사업이었는데, 문체부와 기재부를 설득하여 그해에 바로 예산을 잡고, 동대문구에 2개층의 공간을 마련하여 강의실과 창작마루 광무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본 설계가 합리적이지 않아서 매일 밤을 새워 연구해서 설계도를 변경했습니다. 분장실을 포함하여 모든 편의시설과 가구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창작마루가 들어선 곳은 과거에 광무대가 있던 자리입니다. 130년전 전통연희의 중심이었던 광무대를 부활시키고 신진 전통예술가들의 창제작과 중견 전통예술가들의 공연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습니다.


국립정동극장에서는 어떤 예술행정을 펼치고 싶은지요?

전통무용가 출신이 예술행정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있겠지요. 옛말에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하여 “하나로서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형입니다. 이렇게 일을 해와서인지 핵심을 잡으면 뭐든 쉽게 풀어가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작년 말에 취임했기 때문에 올해 공연의 라인업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기자간담회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핵심 방향을 잡고 3대 목표와 5대 추진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맞추어 작품 선정과 준비과정을 18장에 달하는 보도자료로 작성했습니다. 제가 작성했기 때문에 20분간 혼자서 한자도 틀리지 않고 모든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임기 동안에 극장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23 정동시즌 기자간담회(사진제공_ 국립정동극장)

 

마지막 질문입니다. 직원들에게 어떤 CEO가 되고 싶습니까?

“행복하고 즐겁게 일해야 한다”를 신조로 삼고 있어요.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CEO가 되고 싶어요. 1달에 1번씩 전체 직원과 모여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직원들과 한강이나 덕수궁으로 나들이를 나가서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모두가 특별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교육에 힘쓸 것입니다. 취임 이후 3번의 교육 기회를 가졌어요. 직원들에게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라든지, 여러 교육이 필요할 것입니다.



2023.3.8.(수) 오전 11시 |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실

인터뷰 및 정리_ 최해리(발행인·무용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