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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마지막회)

이 글은 한국 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공모한 ‘2022년 장애예술 연구 지원 사업’에 선정된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비판과 대안에 관한 연구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 것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Ⅲ. 결론: 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비판과 예술적 변형 가능성



1.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


조선시대 중엽 이후 민중 예술로 정착한 탈춤과 <밀양백중놀이> 같은 전통 민속 연희에는 많은 장애인이 등장한다. 장애인은 반상 차별과 기득권층 풍자에 이용된다. <봉산탈춤>과 통영, 고성, 진주 지역의 오광대에는 주로 양반을 장애가 있는 인물로 설정해 비록 신분은 높지만 온전하지 못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것으로 비하한다. <가산오광대>는 오광대 중 특이한 경우로 다른 오광대의 문둥이가 양반 신분인 데 반해 문둥이가 걸립패로 사람들을 등치고 나쁜 일을 저지르는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장애인을 동정과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제법 오랜 일이다. 사회 전반에서 장애인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기 때문에, 민속 연희에 그러한 시각이 녹아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관한 인식 개선을 시도한 것이 거의 20세기 후반이니 과거 전통 민속 연희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장애와 인권을 연결해 사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장애인 비하를 지속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앞서 살펴본 여러 탈춤과 <밀양백중놀이>는 지난 시대의 것이 아니라 현재도 전승되고 있는 형식이다. 문학, 영화, 연극 등 대부분 예술 장르에서 장애 인식은 과거에 비해 매우 달라졌다. 그러나 전통 민속 연희는 여전히 그 부분에 무감각하다. 이런 무감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장애인 모방춤에 관한 비장애인 입장의 일방적인 해석이 큰 역할을 했다. 전통 민속연희 속 장애인에 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립적이며 건조한 해석이다. 이 방식은 ‘예부터 그렇게 해왔다’에서 그친다. 어떤 가치판단도 없고 역사적 맥락만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이 장애인을 직접 비하하지는 않지만, 방관함으로써 비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해석인데, 채희완이 ‘병신춤’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 대표적이다.  채희완의 해석은 장애인 가족에 의해 행해지는 ‘대리 치유’를 관객과 출연자 모두로 확산했다고 볼 수 있다.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는 춤’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대리 치유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해석이다. 춤은 누가 대신해서 추어 줄 수 없다. 타인이 추는 춤은 그 사람의 춤이지 내 것이 아니다. 춤은 감정의 표현이다. 다층적이고 세심한 내 감정을 도대체 누가 대신한다는 말인가. 또한 ‘춤출 수 없는 몸을 거두어 춤을 추어 몸의 굴레를 벗어난 육체 해방을 꿈꾸는 춤’에도 대리 치유 논리가 숨어 있다. 여기에는 장애인의 춤출 수 없는 몸을 비장애인이 거두어 몸의 굴레를 벗어난 육체의 해방을 꿈꾸게 한다는 것인데, 장애를 굴레로 보고 여기에서 해방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장애가 삶에서 불편한 부분이지만, 굴레는 아니다. 장애의 굴레는 사회가 만든다. 이러한 해석 자체가 장애인에게 굴레를 씌우는 일이다. 장애인에게 장애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조건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병신춤에는 춤출 수 없는 사람도 같이 어울려서 놀자는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라는 부분이다. ‘같이 어울려 놀자’는 것은 장애인이 평소에는 비장애인과 어울려 놀지 못하지만, 비장애인이 병신춤을 추는 것으로 어울리게 해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철저한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다. 굳이 장애인이 모멸감을 느끼는 ‘병신춤’을 추어야만 장애인을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을 대하는 편협하고 차별적 태도가 얼마나 깊게 체화해 있는지를 확인해 준다.


한국 전통 민속 연희는 수백 년 이상 이어진 소중한 민족예술이다. 전통은 전승하는 시대상을 담으면서 이어졌다. 탈춤과 <밀양백중놀이>도 그렇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전통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탈춤도 백중놀이도 만들어진 전통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탈춤 같은 민속 연희 또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며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 전승하는 탈춤과 <밀양백중놀이> 같은 민속놀이의 문제는 장애인을 모방해 대상화·타자화하는 것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민속 연희가 장애인 비하에서 벗어날 방법은 먼저 극에서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설정하는 서사를 없애는 일이다. 시대 인식과 한참 떨어진 비인간적 설정은 아무리 전통이라 해도 정당화할 수 없다. 또한 장애인 모방을 해석하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해석은 그야말로 부정적 시각을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은 이어져야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하나의 예로 1980년대 공옥진 여사가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서 병신춤을 선보일 때, 관객의 항의로 공연을 중단하고 몰래 빠져나왔던 예는 우리와 다른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는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이미 많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통 민속 연희가 장애인 모방을 이용한 극적 구성을 수정 없이 계속한다면, 인권 의식이 높아지는 대중에게 점차 외면 받을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전통 민속 연희계 내부에서 장애인 당사자 입장을 고려한 연희와 해석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통영 비뚜루미 양반탈(박진태, 『통영오광대』, 화산문화, 1985.)

 

 

2. 예술적 변형의 가능성


동시대 춤(Contemporary Dance)은 장애인의 몸을 풍자를 위한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런 시각은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지극히 편협한 관점이다. 동시대 춤은 장애가 있는 몸을 기존 안무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맞이한다. 반복 불가능한 안무, 제어할 수 없는 몸, 안무에 포섭되지 않고 도주하는 몸은 규정할 수 없는 동시대의 변화를 담지한 몸으로 대접받는다. 한국 전통 연희에서 장애인 모방춤은 이러한 동시대의 흐름과 정반대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전통’의 이름으로 계속되는 장애인 인권에 관한 무감각과 의도적인 무시는 여전히 봉건 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탈춤꾼을 중심으로 탈춤에서 하나의 역할로서 춤추는 존재에서 극적 맥락을 벗어나 독립적인 춤을 추는 한 명의 춤꾼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활동이 보인다. 탈춤에서 극적 맥락을 벗어난다는 것은 탈춤의 결정적인 특징인 장애인을 이용한 풍자와 비판이라는 짐을 덜어낸다는 의미이다. 민중은 양반과 관리 같은 권력층과 승려 같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계층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인 장애인으로 묘사하면서 심정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탈춤의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난다면, 더는 장애인을 풍자와 비판의 도구로 삼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른바 병신춤에서 장애 서사를 없애고, 장애인 모방 움직임을 약화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또 하나 변화의 배경은 탈춤과 민속놀이가 더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전승되는 탈춤과 민속놀이 대부분은 국가나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문화재는 예능보유자부터 전수조교 이수자로 이어지는 위계가 분명하고, 연희할 때도 이 위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출연자 개인보다 전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재인 탈춤과 민속놀이를 제대로 연희할 기회가 일 년에 한두 번에 그친다는 점이다. 단체는 유지되겠지만, 춤꾼 개인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릴 기회는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춤꾼은 탈춤의 맥락에서 벗어나 여러 무대에서 춤을 선보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춤을 예술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모방춤이 변화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 현대무용, 한국무용 창작 등 다른 장르에서 문둥춤 동작을 변형하거나, 탈춤의 서사를 모티브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는 작품에서 나타난다. 전통 민속춤 속 장애인 모방춤(병신춤)은 변화 중이고, 가능성을 넘어 재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에릭 홉스 봄은 전통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전통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전통연희도 그렇다. 인권과 장애에 관한 인식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병신춤에 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 더는 ‘춤출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추는 춤’ ‘춤출 수 없는 몸을 거두어 춤을 추어 몸의 굴레를 벗어난 육체 해방을 꿈꾸는 춤’ ‘사지는 멀쩡하나 모두가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 폭로하듯이 추는 비판적 측면이 있다’ ‘병신춤에는 춤출 수 없는 사람도 같이 어울려서 놀자는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결코 신체장애자를 모멸하기 위한 춤이 아니다’라는 식의 해석으로 장애 인식 변화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대안은 전통 연희 판 안에서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 변화를 눈여겨보기를 바란다. 



글_ 이상헌(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