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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특강 ‘대안적 현대 박물관학_전시 속의 사물과 감각, 그리고 스토리텔링’ 참석 후기


지난 6월 6일, 인사동 KOTE에서 비판적 박물관학에 대한 담론과 사례를 소개하는 초청특강 ‘대안적 현대 박물관학_전시 속의 사물과 감각,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사)한국춤문화자료원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의 공동주최로 진행됐다. 초청 강사는 니꼴라 르벨(Nicola Levell, 예술인류학자이자 큐레이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류학과 교수)과 앤서니 알란 셀튼(Anthony Alan Shelton, 예술인류학자이자 큐레이터, 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류학박물관 MOA 관장)이었다. 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얽혀 있는 도시풍경과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건축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다. 도시의 효율적 이용, 경제적 이익, 편리와 정갈함을 이유로 재건축과 재개발사업이 행해지고, 작고 낡은 동네가 사라지며, 도시풍경을 대단지 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균일하게 조형하는 도시에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때문에 북미 전체에서 문화의 다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캐나다 밴쿠버에서 ‘비판적 박물관학’을 주창하고 실천해 온 두 사람의 방문에 큰 흥미를 갖고서 강연에 참석하였다. 


강연이 열린 인사동 KOTE 역시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인사동 KOTE는 인사동에서 종로3가 방향 끄트머리에 위치하며, 1960-1970년대에 지어진 여러 채의 낡은 건물과 중앙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낡은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얼룩덜룩했고,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깊은 자국이 나있기도 했고,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했다. 중앙정원에는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 인사동 골목에서 큰 나무를 만나는 건 뜻밖의 일이었다. 오동나무는 제멋을 뽐내며 자유롭게 자라있었고 의기양양했으며 생기가 넘쳤다. 그뿐인가. 그를 중심으로 들풀이며, 장미덩굴이며, 담쟁이며, 여러 식물이 낡은 건물의 위로를 받으며 마음껏 난장을 이뤘고, 볕이 잘 드는 벽 아래에는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바로 옆 블록은 재건축공사가 한창이었고 멀지 않은 건너편 블록엔 고층 건물이 병풍처럼 솟아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나는 중장비의 굉음과 사정없이 날리는 먼지는, 이곳에서 정화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서울 한복판, 낯설고도 편안한 이곳에 바다 건너 멀리에서 온 두 인류학자의 강연이 열리다니, 묘한 어울림에 기분이 설렜다.

  

니꼴라 르벨 교수의 강연  사진제공_ 한국춤문화자료원

 

첫 번째로 니꼴라 르벨 교수가 「북미 북서 연안 현대예술, 인류학, 그리고 탈식민화 욕구」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Shadows, Strings, & Other Things〉 전시를 소개하며 전세계에서 수집한 인형극에 관한 이야기와 박물관이 전시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강연하였다.


르벨 교수는 이 전시를 기획하며 “어떻게 전시를(인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줄 것인지”, “무엇을 보여주고, 그 지식을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인형과 그들의 문화가 방문자에게 낯설고 독특한 것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존재로 가닿길 바란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인형을 움직이는 방식에 따라 ‘그림자’, ‘줄’, ‘막대’, ‘손’, ‘스톱 모션’으로 분류하여 스테이지를 지정하고 배치하여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스테이지 중심에는 또 하나의 공간(방)을 만들어 한쪽 벽에는 인형극 무대를 만들고 반대편에는 해당 인형극을 소개하는 영상(지역의 문화, 인형제작, 인형극 무대 뒤편, 인형극을 만드는 장인 등을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 형식)스크린을 설치했다. 공간 주위로는 투명상자에 또 다른 인형들을 설치하여 인형의 전면을 볼 수 있게 하였고 인형에 어울리는 색채, 조명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직선형의 연대기적 배치와는 다른, 마치 어느 작은 마을을 여행하며 골목을 걷고, 공간을 발견하고, 그 공간을 방문하는 인상을 주는 동선이었다.

  

니꼴라 르벨 교수의 2019년 전시

 

이 전시는 방문자 개인이 전시를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르벨 교수는 전시콘텐츠를 활용하여 학습 도구를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로 제공하며(이 자료는 지금까지도 제공되고 있다. https://www.shadowstringthings.com/teaching-kits), 학교와 가정, 그밖에 공동체에서 인형극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며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공연을 만들어 가기를 권했다. 전시를 보러 온 방문자는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보는 즐거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 인형극을 직접 만들어 보는 제작자이자 이를 공동체와 나누는 문화예술 실천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두 번째 강연은 앤서니 알란 셀튼 박사가 「비판적 박물관학: 큐레이팅 실천과 창의성」이란 제목으로 근대적 박물관이 가져온 관점과 역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실천 사례를 소개하였다.


1970년 중반까지 박물관은 사회의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인정받고 공공기관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해 왔지만, 1970-1980년대에 박물관에 대한 많은 비판이 쏟아지며 변화를 맞이했다. 특히 독일과 영국에서는 왜 박물관 전시에 노동자 계급과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중앙 및 남아메리카인의 역사가 무시되고 백인 중심의, 백인이 해석한 역사만 다루는지, 그것을 누가 정하는지 등과 같은 질문과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이민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박물관 전시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였다. 더 이상 박물관의 컬렉션은 인류에게 공통적이며 중립적 매체가 아니었고 수많은 관점과 경험이 선언되고, 경쟁하고, 도전하는 전쟁터로 다시 그려지게 되었다.

  

앤서니 알란 셀튼 교수의 강연  사진제공_ 한국춤문화자료원

 

셀튼 박사는 비판적 박물관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역사는 일관성에 기초한 연대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구성되고 자유롭게 변화한다. 둘째, 박물관의 컬렉션은 인류의 보편적 성향의 결과가 아니며 수집자의 독특한 주관성에 의해 수집된 것이다. 셋째, 지식은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공동체가 만드는 것이다. 넷째, 박물관의 사물과 그 의미는 깨지지 않는 관계를 갖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의미는 표류하고, 무한히 열려있고, 즉흥적이고, 불합리하다.


그는 비판적 박물관학을 설명하는 작업으로 벨기에의 예술가이자 시인인 마르셀 브루데어(Marcel Broodthaers)의 상상의 박물관,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린 소피 칼(Sophie Callie)의 1980-1993년 생일선물전, 프레드 윌슨(Fred Wilson)의 마이닝 더 뮤지엄에서 첫 큐레이팅한 전시, 스위스 큐레이터 자크 하이나드(Jacques Hainard)의 ‘파열의 박물관학’ 작업 등을 소개하였다. 모두 관습적인 박물학을 벗어나 주류에 도전하고 관습적인 것을 비틀고 작은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비판적 박물관학이 박물관의 이념적, 정치적 의미를 드러내고, 자기 비판적인 전시회를 큐레이팅하는 등의 변화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중대한 과제 앞에 안일하고 인류세의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는 지역사회에 역할을 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도 관습적으로 남아 있는 연대기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새로운 ‘은유(metaphor)’를 상상할 것을 제안하고, 그의 은유인 ‘구름’을 소개하며 강연을 마쳤다.


“구름은 어떻습니까.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어떤 때에는 연약하고, 어떤 때에는 결합하며, 시간의 불확실성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시간은 구름과 같지 않습니까. 개인과 공동체의 시간은 따로 존재하기도, 결합하여 더 커지기도, 다시 분산하기도 합니다. 구름은 정확한 구조로 되어 있기보다는 움직임 가운데 나타나는 우연과 같습니다. 저는 세계와 시간을 연대기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구름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앤서니 알란 셀튼 교수의 구름 은유

 

이번 특강에서 소개한 비판적 박물관학의 시사점은 비단 ‘박물관’과 ‘미술관’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 건축, 경제, 인공지능, 영화, 교육, 춤 등 우리가 일하고 공부하는 어떤 ‘분야’와 이 세계를 바라보고 대하는 일상적 태도에도 필요한 관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은유를 무엇으로 삼을까. 나는 이번 후기를 적으며 강연이 열렸던 공간의 오동나무와 고양이가 있던 풍경을 떠올렸고, 그곳에서 느낀 낯선 편안함을 계속하여 곱씹기로 했다.    



글_이승민(독립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