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허용순이 오랜만에 한국 관객들 앞에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6월 29일과 30일 양일간 유니버설발레단이 대한민국발레축제의 폐막작으로 공연한 <완벽하지 않은 완벽함(Imperfectly Perfect)> 무대를 통해서다.
유니버설발레단과는 2008년 <천사의 숨결(Breath of an Angel)>, 2011년 <디스 이즈 유어 라이프(This is your life)>에 이은 세 번째 협업 무대이며, 대한민국발레축제와는 지난 2016년 <에지 오브 서클(The Edge of the Circle)>과 <콘트라스트(Contrast)>를 선보인 뒤 두 번째 인연이다. 언급한 작품들이 다른 발레단에서 올려진 뒤 레퍼토리 형식으로 국내에서 공연된 것과 달리 <완벽하지 않은 완벽함(Imperfectly Perfect)>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초연하는 신작이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숨가쁜 스케줄 속에서 한국 관객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을 준비하느라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첫날 공연 직전의 대기실에서 만났다. 신작 초연을 앞두고 안무가도, 무용수도, 스태프도 가장 예민해져 있을 시간이었지만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완벽해 보이려고 애쓰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우리의 모습 혹은 인생
곧 베일을 벗게 될 작품에 대해 소개해달라고 하자 허용순은 ‘우리의 모습’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타인에게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그 완벽함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의 작품은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완벽함 속에서 완벽하지 않음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을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품은 두 커플을 축으로 해서 전개되는데, 뒤엉킨 관계 속에서도 완벽함을 찾기 위해 안간힘 쓰는 세 남녀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를 간직한 두 남녀가 있다. 그리고 이들 다섯 무용수를 둘러싼 주변인들로 여섯 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이야기의 다채로운 결을 만들어간다.
제목인 ‘Imperfectly Perfect’는 허용순의 안무노트에 오래전부터 적어두었던 단어로, 인생에서 완벽하기 어려운 구조나 상황, 또는 인간관계를 가리킨다. 상황이나 구조가 완벽하진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완벽해질 수도 있으며, 인간관계 또한 누군가에겐 완벽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완벽하지 않은 모순적인 의미를 담았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작품 의뢰를 받았을 때 노트에 써두었던 단어를 떠올리고 드디어 이 작품을 만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출연진 구성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니버설발레단 단원이 아닌 유럽에서 온 무용수들의 이름이다. 이 공연을 위해 네덜란드댄스시어터, 스위스 바젤발레단, 미국 시더레이크컨템포러리발레단 등을 거쳐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진영, 스펠바운드컨템포러리발레단과 자를란트슈타츠발레단 등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무용수 겸 안무가 마리오엔리코 디 안젤로, 마르세유국립발레단과 뉘른베르크슈타츠발레단, 자를란트슈타츠발레단 등에서 활동한 스페인 출신 무용수 사울 베가 멘도자가 합류했다. 이 공연을 위해 허용순이 특별히 캐스팅한 무용수들이다.
허용순의 작품은 제목 그대로 완벽하지 않은 조건 위에서 완벽한 최선을 만들어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객원 출연진인 원진영, 마리오엔리코 디 안젤로, 사울 베가 멘도자는 독일에서, 유니버설발레단 단원들은 한국에서 연습하는 이원 체제로 공연을 준비해야 했고 더욱이 유니버설발레단이 파리에서 <백조의 호수> 투어 공연을 마치고 공연 사흘 전에야 귀국해 두 팀으로 나뉜 출연진이 함께 연습에 들어간 것은 불과 공연 이틀 전이었다.
허용순은 이러한 방식이 결국 ‘완벽하지 않은 완벽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는데, 이는 함께하는 무용수들에 대한 신뢰가 있어 가능했다.
원진영에 대해 그는 신체라인도 좋지만 어떤 움직임이든 잘 받아들이고 몸을 잘 사용하는 데다, 클래식과 컨템포러리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풍부함이 강점이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오랜만에 함께 작업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무용수들에 대해서도 강한 기대감을 표했는데, 원진영과 두 남자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춤의 반대편에서 완벽함 속의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커플로는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캐스팅되었다. 원진영과 두 남자 무용수들이 파워풀하고 자유로운 컨템포러리댄스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강미선과 노보셀로프는 발레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강미선에 대해 그는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무용수였다고 말하며, 의상에 대한 이해나 콘셉트 설정, 연습을 진행하는 등의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로, 강하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운 춤을 추는 무용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스토리라인의 중심 축을 차지하는 원진영과 강미선 두 무용수 외에도 이번에 함께하는 한상이에 대해서는 칼날 같은 움직임으로 컨템포러리의 날카로움을 보여주는 무용수로, 예카테리나 크라시우크에 대해서는 무대에서도 너무 아름답지만 새로운 시도를 어려워하면서도 열심히 따라오는 모습이 아름다운 무용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3년 만에 무용수로 돌아온 무대, <백조의 호수>
지난해 허용순은 뒤셀도르프발레단 예술감독인 마르틴 슐래퍼의 안무로 초연한 <백조의 호수>로 13년 만에 무용수로 복귀했다. 슐래퍼가 부임한 뒤 뒤셀도르프발레단은 좋은 레퍼토리를 구축하며 발레단의 입지를 견고하게 다지고 있는데, 그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는 유럽에 전승되는 설화 속에 남아 있는 원형을 되살려낸 새로운 작품이다.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를 원작으로 해서 오늘날의 우리가 보고 있는 <백조의 호수>가 숱한 각색 속에서도 로트바르트가 오데트와 지그프리드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마의 지위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과 달리 슐래퍼의 안무작에서는 로트바르트를 조종하는 오데트의 계모가 악의 세계를 지배한다. 슐래퍼는 오랜 리서치를 통해 <백조의 호수>의 전승 설화 중에서 오데트의 계모인 부엉이와 할아버지라는 캐릭터가 있었던 것을 찾아냈고 이 두 캐릭터를 작품 속에 녹여 넣어 악의 세계를 강화했다.
13년 만의 무대에 대해 허용순은 많은 고민이 있었던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슐래퍼와 무용수 시절부터 쌓아온 오랜 신뢰 관계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후회 없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막상 무대에 올랐을 때는 13년 만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무대에서 떠나 있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고.
독일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뒤셀도르프발레단은 <백조의 호수>를 오는 9월 일본 투어 공연 레퍼토리로 결정했다. 도쿄에서 3회, 오사카에서 1회 공연하며, 오데트의 계모 역은 허용순 원캐스팅이다. 그는 언더스터디가 없기 때문에 부상 관리에 조심해야 한다고 무대에 대한 책임감을 토로하면서도 무용수로 관객들과 만나는 것에 대한 설렘을 내비쳤다.
그가 무용수로 오르는 무대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은 언제일지, 그리고 그가 다음 번에는 한국 관객들 앞에 어떤 작품으로 찾아올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인터뷰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녹취록 정리_원서영(기자)
사진제공_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