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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춤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스테이지 파이터〉와 정보경

포커스

Vol.114-2 (2025.2.20.) 발행

글_ 이희나(춤평론가)

사진제공_ 정보경

 

2025년 1월 18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오후 1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인파로 공연장이 붐볐다. 예매한 티켓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기념품(일명 굿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사람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줄이 뒤섞여 있었다. 팬들이 제작한 듯 보이는, 무용수 이름 피켓이 담긴 상자에는 “하나씩 가져가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그걸 한 장 집어 들고 홀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관객들이 손수 제작한 무용수 응원 피켓이나 불빛이 나는 응원봉을 들고 설레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공연 시작 전 암전이 되자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함성은 마치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무용수들의 말 한마디, 미세한 손짓과 발짓, 작은 표정의 변화에도 팬들은 웃고 소리치며 감동하고 반응했다.

 

오징어게임


지금까지의 무용 공연장에서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만들어낸 이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9월 말부터 3개월 간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에 출연했던 무용수들이 꾸며낸 공연 ‘스테이지 파이터-The Originals’다. 12월 25일 인천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 부산, 광주까지 한달 간 전국 갈라 투어를 가졌다. 댄스 필름, 메가 스테이지, K-콘텐츠 작품, 초이스 by 퍼블릭 미션, 파이널 미션을 거치며 출연진들이 보여주었던 20개의 작품을 영상이 아닌 무대 공연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올렸다. K-콘텐츠나 퍼블릭 미션의 경우 같은 주제-같은 음악으로 두 개의 작품이 존재하는데, 동선의 변경과 무대 위 장면 전환, 혹은 배역의 교차 등으로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상으로는 전달하기 힘든 정적인 장면에서 무용수의 감정표현을 현장감 있게 마주하고, 편집 탓으로 볼 수 없었던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무대 공연을 새롭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스테파〉의 팬들이라면 익히 아는 춤들을 무대화 작업을 통해 신선한 경험으로 만들어 준 데에는 제작팀의 공이 크다. 프로그램 내에서 한국무용 코치였으며 K-콘텐츠 〈오징어게임〉을 안무한 정보경이 안무 디렉터로 공연을 총괄했으며, 김주빈과 조인호가 리허설 디렉터를 맡았다. 원래 무용을 좋아했던 팬들뿐 아니라 이번 기회에 무용을 처음 접한 팬들에게도 무용 공연의 맛과 멋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공연 후 잠시 안무가 정보경을 만나 〈스테파〉 프로그램과 이번 공연에 대한 뒷이야기를 나누었다.

 

때: 2025년 1월 18일 15시 30분

곳: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공연 디렉터 팀 (왼쪽부터 김주빈, 정보경, 조인호)


“관객들의 열정적 반응에 감동했어요”


댄포코(이하 댄): 공연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여기서 선생님이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다른 코치나 안무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나요?

정보경(이하 정): 이번 투어는 제가 총괄 안무 디렉터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른 코치나 안무가들은 방송 후에 해외로 다시 갔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고요. 프로덕션에서 그분들의 동의를 받아 제가 조금씩 재구성을 했어요. TV로 나온 것은 영상 위주로 만든 춤이라 등퇴장이나 전환이 없이 편집된 모습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것들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했어요.


: 무대화하면서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었나요?

: 기본적으로는 방송에 나온 춤들을 나열해서 모음집처럼 만든 공연이에요. 그런데 방송에서는 모든 춤이 2분 30초-3분 정도로 매우 짧은 숏 피스였어요. 그것들을 쭉 나열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공연처럼 만들고 싶었죠. 보통 가장 짧은 무용 작품을 생각해 보면 10분 정도 되는데, 이 정도의 호흡을 가진 작품을 일반 관객들이 마주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계속해서 3분짜리 춤만 출 수는 없으니까요.


: 아, 그래서 퍼블릭 미션이나 K-콘텐츠 작품들을 묶어서 만들었던 거군요? 그랬더니 반응이 어땠나요?

: 무용을 잘 모르는 프로덕션에서는 10분, 12분이면 너무 길지 않냐며 걱정했어요. 그래서 “무대 작업은 저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부탁을 했죠.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어요. 관객들이 길거나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은 것 같아요.

: 맞아요. 배역이 같은데 무용수만 바꾸면서 같은 작품을 또 보여주기보다 장면마다 인물을 교차하면서 등장시키거나 때로는 두 주인공이 함께 춤추는 모습이 시너지가 났어요.

 

부서지는 중:독


: 기무간 안무의 〈부서지는 중:독〉에서 뒷부분에 침묵이 흐르면서 처절하게 걸어 나오는 장면이 추가됐는데 선생님이 연출한 것인가요? 임팩트가 강해서 관객들이 그 부분에서 많이 감명받은 것 같아요.

: 각 작품마다 디렉터가 존재하기에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변화 구간의 의견을 제시하였죠. 퍼블릭 미션의 마지막 작품이 무간이의 〈중독〉이었고 흐름을 한번 비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구간에 나오는 악기 소리를 반복시켜 달라는 요청에 안무팀의 김주빈 리허설 디렉터가 뮤트를 만들어줬죠. 연습 현장에서 시도해 보니 좋더라구요. 그래서 연습이 거듭될 때마다 최대한 호흡과 동선을 더 길게 가져가 보며 장면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실로 마지막 투어 때까지 콘서트마다 계속 디테일을 바꾼, 제가 가장 집착했던 장면이었어요.


: 마지막 순서에서 STF무용단의 첫 작품이라고 소개한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운명〉이라는 제목의 작품이구요. 그것 역시 보통의 무용 작품으로 가기 위한 실험적 무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K-pop 무대 같았던 방송에서의 작품들보다 긴 호흡으로 조금 더 무용 작품에 가깝게 만들어 보았어요. 에너지를 풀(full)로 쏟아붓는 짧은 춤만으로 앞으로의 공연을 구성할 수는 없으니까요.


: 이번 갈라 투어는 공연장도 그렇고 관객들 반응도 그렇고 전형적인 무용 공연이 아니잖아요. 오늘 벡스코 무대는 그래도 공연장 느낌이었지만. 무용수들은 이렇게 공연하는 게 생소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 다들 관객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너무 놀라워했고 감동했죠. 믿기 어려운 현상을 저희 모두 체감하며 춤이 주는 강력한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어요. 관객들 덕분에 다들 엄청 행복하게 공연을 하고 있어요. 사실 무용 전용 무대가 아니어서 시야 확보 면에서 관객들에게 아쉬운 공간이 될 수 있었을 테지만 저희 무용수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자유로웠어요. 프로시니엄 무대에 익숙했던 무용수들은 로드나 아일랜드가 설치돼있어서 동선이 더 다이내믹할 수 있었고 관객의 위치가 다양해서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서울콘 관객들과 기념사진


: 투어 장소마다의 특징이 궁금해요.

: 지역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요. 인천 낮 공연이 투어의 첫 공연이었는데, 무용수들과 스태프 모두 굉장히 긴장했고 경직된 상태였어요. 관객들이 아무리 〈스테파〉의 찐팬들이라고 해도 몸으로써 약 130분 동안 직접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대와 걱정이 섞였죠. 그런데 첫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열광적 호응을 보고 무용수들의 몸도 완전히 풀렸어요. 그러고 나니 저녁 공연은 무대를 온전히 즐기면서 너무 잘 하는거예요. 지금까지 공연 중에서(부산 낮 공연까지) 가장 분위기가 좋았던 때는 인천 저녁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은 공연장이 엄청 컸지만 대부분 무용수들의 홈그라운드 지역이기 때문에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했고요. 지방 투어 일정 자체가 빠듯하게 운영되다 보니 무용수들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그리고 부산까지 무탈하게 잘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 공연은 엠넷이 기획하거나 주최한 건 아닌 건가요?

: 네. TV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엠넷은 방송까지만 담당하는 걸로 이야기했어요. 무용단 결성 후부터의 활동은 다른 기획사가 맡아서 해요. 그런데 무용 전문 기획사가 아니라서 저희가 이번 투어에 함께 하며 도움을 주고 있죠.


"방송을 통해 무용수들이 많이 성장했어요"


: 시작 이야기를 하니, 처음부터 궁금했던 부분을 묻고 싶어요. 출연 무용수들을 어떻게 섭외하고 선정했나요? 시작 전부터 염두에 둔 무용수가 있었나요? 방송 중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PD 픽이니, 제작진 픽이니 하는 루머도 오갔거든요.

: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엠넷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했어요. 무용수들이 각자 짧은 움직임 영상과 프로필을 제출했고 엠넷이 그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죠. PD 픽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그렇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스타성을 판별해서 뽑았을 거예요. 최호종같이 실력 있는 무용수가 지원했을 때는 무척 반겼고요. 짧은 오디션 영상과 프로필 사진만 보고 스타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가 실제로는 생각과 달라서 제작진이 오히려 당황한 적도 있어요. 모든 상황은 대부분 ‘리얼’이었습니다. 


: 시청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예술을 놓고 ‘계급 전쟁’이라는 말이나 퍼스트-세컨트-언더 라는 구도를 만들고 수치화하여 줄을 세우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 저도 처음에는 그 부분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송을 진행하면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무용수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언더 계급은 "더 내려갈 곳이 없으니 다 내려놓고 승부하자"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임했고, 세컨드는 "조금만 더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했고요. 퍼스트는 내려가지 않으려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했죠. 모두 체지방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촬영했고, 이번 도전을 통해 다들 춤과 모든 것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무대 뒤 무용수들


: 무용계가 워낙 좁잖아요. 최호종과 김규년처럼 스승과 제자가 함께 출연하기도 했고, 서로 대부분 아는 사이일 텐데 아무리 편집 기술을 부린다 해도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나 〈스맨파(스트리트 맨 파이터)〉 같은 대결 구도를 찾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 맞아요. 처음에 무용수들 인터뷰를 하는데 다들 너무 순하고 서로 배려하고 리스펙하는 태도를 취하니 방송국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었대요. 그래서 인터뷰를 다시 하기도 하고 묘하게 경쟁 구도를 넣고, 스승과 제자의 스토리도 삽입하는 식으로 연출을 했죠. 


: 출연자들이 탈락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나요? 방송을 보면 "또 탈락한다고?"라며 너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들이 보였어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제작진이 너무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출연자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 계급 전쟁, 서바이벌이라는 콘셉트는 알고 시작한 거였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은 비밀이었어요. 무용수들은 자신들이 어떤 미션을 할지, 어느 부분에서 탈락할지 몰랐어요.


: 프로그램에서 두 번의 탈락이 있었잖아요. 그 중 첫 번째 탈락 때는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자기 대거 탈락을 시키면서 작별 인사 같은 것도 내보내지 않아서 잔인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반이나 최종인의 경우를 눈여겨봤는데, 마지막 미션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어서 무슨 사정이 있나 짐작만 했습니다.

: 역시 방송이다 보니 보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였고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편집이 많이 되었어요. 아쉽긴 했지만 나쁘게 나간 출연자는 없었어요. 아이반은 초반에는 이슈를 끌어당기는 역할을 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하차한 것이고요. 최종인 역시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무가로서의 개인 공연 일정과 촬영 일정이 겹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거였어요. 종인이는 지금 무용계에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신인 안무가거든요. 이 둘 뿐만 아니라 너무 훌륭한 무용수들이 많았는데 조명되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어요. 매회 하루를 넘겨 촬영을 하곤 했는데 그걸 세 시간 내에 담아내기에는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죠.


: 무용수 기무간이 파이널만 앞둔 채 자진 하차할 때도 사전에 아무도 몰랐나요?

: 네. 무간이는 굉장히 좋은 아티스트예요. 방송에서도 언뜻 보였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친구이고 무엇이든 면밀히 들여다보며 사유해야 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그 시간을 주지 않았죠. 그런 형식이 처음부터 맞지 않았어요. 잘 결정했다고 생각했어요. 기무간은 하차함으로써 더 큰 주목을 받았죠.


: 정말 쉴 새 없이 미션이 진행됐나 보네요. 댄스 필름 제작 과정을 보면 첫 촬영은 여름 전으로 보이던데 계속 촬영을 진행한 건지요?

: 방송 일 년 전부터 기획에 착수해서 5월에 첫 촬영을 했고요. 진행을 하다가 무용수들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한 달 가량 쉬었다가 다시 촬영을 시작했어요. 매주 이틀을 꼬박 촬영해서 한 주의 방송이 나가는 식이어서 다들 너무 힘들었어요. 모든 작품을 (작품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일주일 안에 완성해야 했어요. 심지어 마지막 파이널 투표를 위한 개인 작품은 이틀 만에 만든 것들이에요. 놀랍죠?


: 기존에 하던 무용 작업 방식과 너무 달라서 그게 힘들었을 것 같네요. 기획을 꽤 오래 전부터 했는데, 그 기간에 비해서 진행 과정이나 평가 등이 좀 덜 치밀한 것이 의아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피지컬을 평가하더니 갑자기 안무력까지 평가를 해서, 무용수를 원하는지 안무가까지를 염두에 둔 선정이었는지 시청자로서 혼란스러웠어요.

: 안무가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애초에는 안무하는 미션은 없었는데 단순히 춤추는 것만으로는 유사한 미션만 나올 것 같았죠. 그래서 재미를 위해 안무 미션이 생겼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매회 미션이 변경되거나 배가돼서 들어가기도 했어요. 아마 엠넷 측이 무용을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니 여러 부분에서 혼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스우파〉나 〈스맨파〉만 생각하고 있었다가 예술 무용 장르는 너무 다르니 제작진들이 모르는 게 많았어요. 그래서 방송에 등장한 코치들 뿐 아니라 많은 무용가들이 사명감과 열정을 갖고 안무와 자문을 해 주었어요. 1-2화 피지컬 미션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좀 과장되게 나온 측면이 있죠. 그 부분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인 〈피지컬100〉의 무용 버전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었어요.


: 그 첫 화에서 발레 피지컬 미션을 할 때 너무 혹사시키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 피지컬 미션은 좀 극한으로 몰아붙인 느낌은 있죠. 그런데 방송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희 코치진들과 제작진들 모두 촬영 현장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한 건 무용수들의 안전이었어요. 어느 곳에서건 반드시 댄스플로어를 설치하도록 했고 플로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했구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춤을 출 수는 없으니 촬영 전에 반드시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했죠. 구급대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부상이 있으면 촬영을 중단하고 쉬어갔고요. 방송 제작진들이 놀랄 정도로 예민하게 요구했어요.

 

신선놀음


: 역시 방송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았군요. 그런데 그 서로 다른 장르의 테크닉을 수행하는 미션 때는 부상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어요. 다른 장르 테크닉 미션이 꼭 필요했던 건가요?

: 여러 장르가 혼합된 무용수를 뽑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테크닉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죠. 생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브리제 볼레(brisé volé)가 작품에 들어가면 해야 하고요. 가령 발레리노 김유찬은 선화예중에서는 발레를 전공하다가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에 발레도 한국무용도 잘하는 무용수예요. 현대무용까지 총 장르를 망라하고요. 그런 전천후 무용수들이 무용단 작업에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미션을 실시했어요. 사실, 프로그램이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로 장르를 나누어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일반 대중들이 각 장르의 특수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미션을 수행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고 눈에 띄기 위해 컨템퍼러리한 춤들을 추더라고요. 더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이니까요. 그 와중에 한국무용수 박준우는 한국무용 전공자로서 지켜야 할 춤사위를 놓지 않고 춤을 췄어요. 마지막 솔로 콘텐츠에서 발레리노 정성욱도 오히려 순수한 발레 동작을 지켰고요. 그런 점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 얘기를 듣고 보니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춤을 추고 많은 도전을 했네요. 무용수들이 가장 즐겁게 임했던 미션으로 무엇을 꼽나요?

: 자신들이 직접 안무하고 연출했던 퍼블릭 미션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공연 작업에서도 디렉터가 생각한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가장 신경을 써서 편집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무용을 사랑해 주세요"


: 시청자들이 불만이 없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이 방송을 통해서 무용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성과인 것 같아요. STF무용단으로 뽑힌 12명 이외에도 방송 출연했던 64명의 무용수 모두가 인기가 많아지고 인지도가 생겼어요. 역시 매스 미디어의 힘은 대단하네요. 

: 맞아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무용수들도 다들 너무 놀라고 있어요. 삶 자체가 바뀌어버린 느낌이고요. 기성 무용인으로서 저도 책임감이 커진 것 같아요. 개인적 사정으로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한 실력이 있는 무용수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관객분들이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 흐름을 잘 타서 무용이 더 사랑받고 이들의 공연뿐 아니라 다른 무용 공연에도 관심들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 네, 저희 모두가 그걸 바라죠. 프로그램 방영 이후에 무용학원이나 센터에도 춤을 배우겠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해요. 무용인으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한편, 이 콘서트(갈라 투어)가 끝나면 각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작업을 할 텐데요. 과연 스테파 팬들이 호흡이 길고 추상성이 강한 무용 작품도 사랑해 주실지 궁금해요. 지금의 현상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STF 무용단의 신작 운명


댄: 이번 갈라 투어는 39명의 무용수가 함께 했는데요. 앞으로 STF무용단이 활동할 때 또 이런 규모의 공연을 할 수 있을까요?

: 아마 힘들지 싶어요. 무용단은 딱 12명만으로 결성된 거고, 기획사와도 그렇게만 계약을 하게 되는 거라서요. 각자 팬들이 있고 또 작품마다 규모가 달라서 다들 뭉쳤을 때 시너지가 날텐데 이들이 빠져나간 후 무용단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궁금합니다. 무용단은 4월 경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12명의 무용수들은 현재의 인기와 팬들의 사랑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의 무용단 방향과 색깔을 고민하고 모색해야 할 거예요.


: 마지막으로 스테파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 지금 보여지는 재미와 즐거움도 분명 무용이 갖고 있는 가치이지만 그것을 넘어서 춤 예술이 갖고 있는 가치를 느껴주면 고맙겠습니다. 무용에 계속 관심을 갖고 애정을 보내주세요. 팬들을 볼 때마다 "무용을 계속 사랑해주세요"라고 말씀드리면 "당연하죠"라고 답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이 기회를 발판으로 더 많은 관객이 모여서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무용 예술로 커나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더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의 춤예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TV 프로그램 파이널 촬영 후 무용수들과 코치진


‘몸으로 싸우는 무용수들의 잔혹한 계급 전쟁’ 〈스테이지 파이터〉는 2024년 9월 24일부터 11월 26일까지 총 9회에 걸쳐 엠넷을 통해 방영되었다(한국무용 24명, 현대무용 24명, 발레 16명이 참가). 2024년 12월 25일 인천을 시작으로 한 갈라 투어는 서울(12월 28-29일), 대구(1월 11일), 부산(1월 18일), 광주(1월 26일)까지 계속되었다. 여기에는 STF무용단으로 최종 선발된 12명의 무용수들(최호종, 강경호, 김혜현, 김종철, 김현호, 박준우, 김효준, 김유찬, 윤혁중, 정성욱, 김시원, 김규년)과 그 외 무용수 27명(고동훈, 기무간, 김경원, 김도현, 김민석, 김상길, 김승욱, 김영웅, 김재진, 김태석, 류태영, 문준온, 박민우, 박진호, 방성현, 백상하, 성훈모, 신민권, 안시온, 양성윤, 이진우, 장성범, 장준혁, 전태후, 정혜성, 최규태, 하원준)이 함께 했다. 프로그램을 1화부터 유튜브 미방영분까지 빠짐없이 챙겨 본 애청자로서, 무용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춤 전문 웹진의 편집자로서 이 진귀한 무용 현상은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원하기만 했던 ‘춤의 대중화’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들의 행보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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