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포커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제고려학회 ‘제16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 참가 후기

포커스

Vol.122-2 (2025.10.20.) 발행


글·사진_ 최혜선(최혜선DA댄스컴퍼니 대표, 단국대학교 무용학 박사과정 수료)




2025년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의 몽골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Mongolia)에서는 국제고려학회(ISKS: International Society for Korean Studies)가 주관한 ‘제16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ISKS International Conference of Korean Studies)’가 열렸다. 필자는 무용역사기록학회가 조직한 제2예술분과 패널(좌장: 최해리)의 발표자로 참가했다.


국제고려학회는 세계 각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학문 네트워크로, 남북한 연구자들이 함께 학술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개최지 선정에서 북한 연구자들의 참여 가능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점이 독특하다. 이번 몽골 개최 역시 그 맥락 위에서 결정된 것이지만, 최근 몇 년간 북한 연구자들의 부재로 인해 남북 공동의 대화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 학술대회가 다른 국제 한국학 포럼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발표의 공용어가 ‘한글’이라는 데 있다. 이는 한국학 연구자들이 언어의 위계를 넘어 한글이라는 언어 및 사고 체계에서 소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국제고려학회, 몽골국립대학교, 몽골과학아카데미 국제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했으며, ‘다극화하는 세계와 코리아학(A Multipolar World and Korean Studies)’을 주제로 열렸다. 세계 곳곳의 연구자들이 한국학의 미래를 논의하는 가운데, 필자에게는 박노자 교수(오슬로대학교)의 기조연설이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국 대중문화의 확산 속에서 한국학이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영어 중심의 학계 언어 체계와 연구의 산업화가 학문적 깊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화연구에서 정치적 감수성이 소거되고, 연구 주제가 시장의 요구에 종속되는 현상을 비판하며, 학문이 속도보다 깊이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필자에게 예술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담론의 중심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연구자들이 주도하는 학문 생태 속에서, 비영어권 예술연구자와 특히 여성 연구자들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무용역사기록학회가 조직한 패널이 예술분과의 하나로 공식 채택된 것은 의미가 깊었다. 우리 패널은 ‘동시대 한국춤 공연콘텐츠의 내셔널리티와 로컬리티’를 주제로, 전통춤의 현대적 재해석과 문화콘텐츠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성과 민족성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선정(단국대) 교수는 근대무용가 배구자의 신민요춤 복원 연구를 통해 근대춤 유산의 창조적 계승 방안을 모색했고, 이경호(전북대) 교수는 전북 진안의 궁중무용 유산 <금척무>의 지역문화콘텐츠화 사례를 분석했다. 필자는 강릉단오제의 <관노가면극>을 현대무용극 <단오서곡>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축제와 무용창작의 접점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한경자(강원대) 교수는 삼척 기줄다리기의 전승 현황을 통해 민속놀이의 무용적 가치를 탐색했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전통춤은 보존의 대상을 넘어 창조의 자원”이라는 논의가 오갔다. 우리는 전통춤이 지역성과 민족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의 형태로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동시대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발표를 마친 뒤, 일행은 몽골국립예술문화대학교(MNUAC)를 방문해 학장 바트에르덴 친바트(Bat-Erdene Chinbat) 박사를 만났다. 그는 몽골의 대표적 무용·음악학자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국가축제 나담(Naadam)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바트 학장은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학술 및 공연 교류를 제안했다. 특히 무용과 교수진과 학생들은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와 우리를 위해 전통춤 공연을 준비해 주었는데, 품위가 있으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춤사위와 선율은 몽골 예술의 정체성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출국 전날,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관람한 공연 ‘유목민의 전설(Nomadic Legend)’은 몽골의 대지와 유목의 삶이 스며든 총체 예술로, 인간의 몸이 자연과 영혼의 경계를 잇는 통로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민속예술단 차강라바이앙상블(Tsagaan Lavai Ensemble)의 약 50명의 악사와 무용수가 참여한 이 공연은 흐미(Khoomei), 마두금(Morin Khuur), 참(Tsam), 비옐게(Biyelgee) 등 몽골의 무형문화유산을 현대적 무대 미학으로 재구성한 대규모 공연이었다. 전통과 현대,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무대는 ‘예술로서의 민속유산’과 ‘상품으로서의 전통예술’ 사이의 균형을 보여주었다. 몽골의 예술가들이 전통을 지키면서도 문화산업과 소통하려는 태도는, 현재 한국 전통춤이 맞닥뜨린 과제와도 맞닿아 있었다. 그들의 춤은 관념적 재현이 아니라, 대초원의 숨결과 정신이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전통이었다.


10월 1-2일, 몽골국립예술대학교 무용단이 ‘2025 아시아댄스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을 찾았다. 8월의 교류 이후 다시 만난 친바트 학장과 학생 무용수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친바트 학장은 “깊은 인연으로 기억하겠다”라며 한국과 몽골의 무용교류를 지속할 뜻을 전했다. 우리 또한 몽골에서 받았던 환대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들의 무대에 힘찬 박수로 응답했다.


춤은 언어를 초월해 마음을 이어주는 예술이다. 몽골의 하늘 아래에서 시작된 인연이 앞으로 두 나라를 잇는 ‘무지개의 다리(Solongos)’로 빛나기를 기대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