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Vol.124-1 (2025.12.5.) 발행
글·사진_ 이희나(본지 편집주간)

지난 11월 4일(화)과 5일(수), 마린스키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발레리노 김기민의 연속 줌 강연이 진행됐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문과대 인문예술진흥사업단(4일)과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러시아-유라시아연구소·북방문화통상융합전공(5일)의 공동 주최로 마련된 자리로, 주요 수강자는 해당 학과 학생들이었지만 발레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김기민 씨는 강연에서 발레 예술의 본질과 한국 발레의 현주소,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전했다.
강연은 노어노문학과 교수님의 진행으로 이루어졌으며, 발레와 예술, 러시아 공연 문화 등을 중심으로 폭넓게 이어졌다. 발레나 러시아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을 위한 설명은 물론, 공연장에서 어떤 좌석이 좋은지, 티켓 구매 팁은 무엇인지 등 실질적인 정보도 제공했다. 후반부의 질의응답 역시 길게 이어졌는데, 러시아와 한국 발레 문화의 차이, 김기민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 러시아 발레가 강한 이유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다음은 김기민 씨의 강연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AI와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김기민의 발레를 이루는 조각들
마린스키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지도해주셨던 두 분의 교수님—마르가리타 쿨릭과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두 분 모두 키로프발레단(현 마린스키) 출신 주역무용수였기 때문에, 수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극장의 전통과 예술적 깊이를 체감하게 되었죠.
스승님에게 배운 가르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도 발레단에서 두 분께 배우고 있습니다. 제 스승님들은 모든 장면에 ‘진짜 감정’을 담아내길 요구하십니다. 예를 들어, 오늘 연습한 장면을 내일 다시 춘다고 해서 동일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하세요. 사람의 감정은 매일 변하는데 춤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같은 동작이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발레 레퍼토리는 무엇인가요?
저는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드라마 발레를 좋아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든 장면의 음악부터 너무 좋아요. 그리고 <아가씨와 불량배(Барышня и хулиган)>라는 작품도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쇼스타코비치 음악, 보야르스키 안무의 1962년작).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공연하고 싶습니다.
존경하거나 영향을 받은 무용수가 있다면?
좋아하는 무용수는 많지만, 특히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Владимир Васильев)를 좋아합니다. 제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그의 영상을 보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연구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은?
제 장점이라면 점프와 상체의 움직임, 그리고 표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강조되는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발레 작품을 매 장면, 매 동작을 하나하나 뜯어서 연구하고 연습합니다. 제게는 단점도 많이 있지만, 장점을 부각시켜 단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러시아 무대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한국 발레를 바라보는 시선
러시아에 무대가 한국과 다른 점, 혹은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먼저 놀랐던 건 공연장의 경사진 무대였습니다. 마린스키나 볼쇼이극장 같은 전통 극장들은 관객석에서 무대를 더 깊고 잘 보이도록 바닥이 살짝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유럽의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구조라고 하지만, 평평한 무대에서 훈련해 온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죠. 러시아 무용수들은 발레 학교에서부터 이런 경사에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럽게 적응하더라고요.
또 하나 놀란 것은 공연 횟수입니다. 보통 발레단은 일정 기간 동안 한 작품을 연습하고 무대에 세우고 그 후에 다음 작품을 연습하는 루틴을 갖고 있는데, 마린스키(볼쇼이도 마찬가지)는 그게 아닙니다. 오늘은 <백조의 호수>를 추고 내일은 <지젤>을 춰요. 낮에는 신작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다른 공연에 올라갑니다. 제 스케줄로만 일 년에 50회 넘게 무대에 오르는 것 같아요.
한국과 러시아 발레의 장단점이라든지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발레는 단기간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한동안 러시아 스승을 많이 초빙해서 배우고 안무도 많이 가져와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진 것 같아요. 이제 우리나라 발레 무용수들이 전세계 많은 발레단에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기술적으로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사실 러시아 무용수들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느낌은 덜 받습니다. 그들은 본인들의 연습 시간 외에 우리나라 무용수들처럼 남아서 연습한다든지 하는 건 드물어요. 대신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해서 감정적으로 훈련하는 메소드 연기 연습을 더 많이 합니다. 모든 움직임과 감정을 작품의 인물이 되어서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박자를 세기보다 음악을 노래하라”는 말처럼 기술적 완성도보다 얼마나 감동을 주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공연 관람 문화도 차이가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 관객들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주시는 편입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릅니다. ‘좋은 공연’이어야 박수를 칩니다. 발레가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인지 관객들의 수준이 매우 높고 까다롭습니다. 처음 공연했을 때는 “저 의상은 그 역할에 맞지 않는다”와 같은 구체적인 피드백을 관객에게 들은 적도 있습니다. 배타적이라기보다 애정에서 비롯된 조언이었지요.
현재 한국 발레의 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 발레가 많이 성장했지만, 아직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최고라면 한국 무용수가 해외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뛰어난 무용수들이 한국으로 모여들어야겠죠. 또 특정 유명 작품이 아니라, ‘발레가 보고 싶을 때’ 어떤 공연이든 관객이 자연스럽게 티켓을 구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발레의 '우리 것'에 대한 고민도 많으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동안 국립이나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춘향>, <왕자호동>, <심청>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그걸 '한국 발레'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또 고전 발레라는 틀에서 보면 결국 러시아 발레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추려고 노력해도 '따라 하기'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러시아 무용수들이 클래식을 잘하는 이유는 그게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차이콥스키나 프로코피예프를 들으며 자기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아리랑을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죠.
예술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지식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느냐가 핵심입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춤을 출 때, 그 감성이 온전히 저의 것으로 묻어나야 만이 비로소 제가 러시아의 춤을 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한국 발레도 우리 문화의 깊이가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대중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발레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저는 발레가 ‘대중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유자가 좋아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대중문화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죠. 두 분야는 다릅니다. 발레가 대중예술로 변하려 한다면 오히려 깊이가 얕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레가 궁금한 이들에게 건네는 조언
발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감상 팁을 주신다면?
세 가지를 권합니다. 첫째, 음악에 익숙해지기. 발레 음악을 미리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너무 어려운 작품으로 시작하지 않기. <호두까기 인형>은 어떤 버전이든 무난하지만, <백조의 호수>는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난도가 있어 초심자에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관객이 되기. 미리 음악을 듣고, 공연장 드레스코드를 생각해보고, 작품의 기본 정보를 알아보면 훨씬 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알수록 좋아지는 법입니다.
발레는 연주자, 파트너, 군무진, 그리고 지휘자와의 호흡이 모두 필요한 종합 예술입니다. 여유 있게 공연을 보고, 전체적인 호흡을 함께 느껴보시면 더 깊은 감동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후배들,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꿈을 꾸든 준비한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시련은 당연히 있지만, 그것이 더 강해지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기민 씨는 강연을 앞두고 오른쪽 어깨 부상을 입어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며 긍정적이고 밝은 태도로 강연에 임했다. 학생들과 발레 팬들이 던진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껏, 그리고 열정적으로 답해준 김기민 씨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