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Vol.125-2 (2026.1.20.) 발행
글·사진제공_ 이미희 (삼육대학교 통합예술학과 교수)
2005년, 국내 최초의 춤 대학부설연구소이자 동시에 융복합연구소로 출범한 ‘우리춤연구소(현 예술과과학기술연구소)’는 일찍이 우리춤을 중심으로 인문·예술·과학기술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 새로운 연구 지평을 열었다. 당시 춤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과학기술과 결합한 융합 연구의 주체로서 제도권 안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던 영역이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우리춤연구소는 우리춤이 지닌 신체성, 감성, 문화적 기억이야말로 미래 예술과 기술 담론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출범하였다.
연구소가 2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근간에는 김운미 교수님과 박종일 교수님의 협업이 있다. 과학기술과 감성 연구를 하던 박종일 교수님과 함께 김운미 교수님은 우리춤의 미학과 전통을 기반으로 연구소의 철학적 뿌리를 세우면서 춤과 기술이 만날 수 있는 학문적 토대를 구축했다. 우리춤과 과학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학문 영역이 장기적 협업 구조로 결합되면서, 우리춤연구소는 국내 최초 춤 융복합연구소로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아울러 김운미 교수님은 연구소의 융합 연구를 실천하는 한편, 한국무용사학회 회장 재임 당시 무용기록학회와의 공동학회를 구성해 현재의 ‘무용역사기록학회’를 창립함으로써, 무용 연구가 연구–기술–기록으로 이어지는 교차적 구조 속에서 체계적으로 축적·확장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무용 융합 연구의 지속성과 공공성을 함께 설계해 온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2005년 창간된 『우리춤연구』는 전통춤 연구의 학문적 기초를 정립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 연구 성과의 축적과 함께 『우리춤과 과학기술』로 학술지명을 변경함으로써 춤과 기술의 본격적인 융합 연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2024년에는 『예술과 과학기술』로 확장 개편되며, 융복합 연구 플랫폼으로 재정립하였다. 이 세 차례의 학술지 명칭 변화는 연구소가 시대 변화에 따라 연구의 지평을 단계적으로 확장해 온 궤적을 상징한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객관적인 평가로도 입증되었다. 연구소는 개소 5년 만에 학술지를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승격시키는 성과를 이루었으며, 한양대학교 교내 우수연구소 연속 3회 선정, 국내 대학부설연구소 연구력 지수 평가에서 전국 규모 인문예술계열 상위권(18위)에 선정되는 등, 춤 연구를 기반으로 한 연구소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는 우리춤연구소가 소수 전공 영역을 넘어, 전국 단위 학술 연구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필자는 2004년 박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2005년 연구소의 개소 때부터 그 과정을 함께하며, 제도도, 선례도 없던 시기에 감성과 기술, 전통과 미래교육을 연결하는 연구를 지속했고, <예술과 감성과학>이라는 한양대학교 융복합핵심교과목을 개발하기도 했으며, 연구소의 첫 번째 융합연구자로 배출되었다. 이는 개인의 이력이라기보다, 연구소가 지향해 온 융복합 연구의 가능성이 실제 연구자 양성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후 연구소에서 배출된 다수의 연구자와 예술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과 기술, 학문과 창작을 연결하며 그 흐름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주년 기념 전시와 학술심포지엄 <기술을 품은 우리춤 20년: 융합창조자들>은 연구소의 시간과 성과를 회고하는 자리를 넘어, 연구소의 정체성과 미래 역할을 다시 조망하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총괄기획자로서 이번 행사를 단순한 ‘기념’을 넘어 ‘전환점’으로 설정하여, 전통·창조·기술이라는 세 축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왔는지를 성찰하고, 나아가 미래 예술과 사회에 던질 질문과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번 행사는 TF팀의 신속한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전시는 우리춤연구소가 지난 20년간 축적해 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소의 20년사를 조명하는 연대기를 중심에 두고, 연구소가 배출한 연구자이자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융합창조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TF팀의 결과물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그동안 수행해온 기술융합공연 디지털댄스시리즈의 실황영상을 전시하여 융합공연의 실천적 흐름을 선보였고, 김지원 교수(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는 “전통의 사유를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다”는 주제로 웹툰과 웹드라마 전시를 통해 전통춤의 사유를 동시대 콘텐츠 언어로 확장하며, 전통예술의 서사가 새로운 산업적·문화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지형 대표(세컨드윈드스테이지 예술감독)는 스스로 창안한 개념인 ‘퍼포비트(Perfobit)’를 내세워 미디어 퍼포먼스와 댄스필름 전시를 선보이며 공연과 전시의 경계를 허물고 무용이 미디어 기술을 매개로 새로운 감각 경험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확인시켰다. 주송현 교수(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는 제로베이스 경매 이벤트를 통해 무용학 전공자로서 미술 경매자로 활동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선보여 무형의 가치를 지닌 무용이 경매를 통해 유통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경기도립무용단 하나경 무용수의 <최승희 보살춤>(안무 안지형)으로 시작한 학술심포지엄은 연구소의 정체성과 연구성과가 보다 분명하게 공유되었다.
김운미 명예교수님의 기조발제는 연구소 설립 배경과 초창기 문제의식을 상기시키며, 우리춤과 과학기술의 만남이 시대적 필요와 학문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AI 시대를 맞아 감성, 윤리, 저작권, 인간성의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제시했다.
필자는 무용·기술 융합 연구의 20년을 연구자이자 창작자, 전승자의 시선에서 회고하고 향후의 방향을 전망하였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몸과 전통춤의 희소성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과, 기술이 융합된 춤 연구는 깊이 있는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 경험이 병행되어야 함을 환기했다.
이윤상 교수(한양대학교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의 발제는 과학기술 연구자의 관점에서 예술과 기술의 탐색 방식 차이를 살펴보며, 서로 다른 언어와 질문 방식이 새로운 창작의 접점을 형성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는 융합 연구가 상호 이해와 존중의 구조 위에서 성립됨을 확인시켜 주었다.
패널 토론에서는 서용덕 교수(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인공지능학과)와 이주영 무용평론가(한양대학교 겸임교수)가 참여하여, 기술 중심 사회로 갈수록 오히려 인간 고유의 감각과 사유,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예술과과학기술연구소의 다음 20년은 기술을 따라가는 연구가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질문하는 예술 연구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지난 20년이 융합의 가능성을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예술이 기술과 사회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설계하는 시간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 중심에서 예술과과학기술연구소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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