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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포스트코리아 ABC4Dance(8): 춤미학의 기초 개념과 연구과제_ 민족미학자 채희완의 ‘춤미학 심층연구’ 세미나 6·7·8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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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6-2 (2026.2.20.) 발행


글·사진_ 장지원(춤평론가·본지 편집주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민족미학자 채희완 선생의 춤미학 세미나의 후기 연재를 통해 춤의 역사를 다시 쓰기보다 다시 읽는 비평적 시선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춤이 스스로의 언어를 되찾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춤미학의 기초 개념과 연구 과제에 대해 채희완 선생이 진행한 ‘춤미학 심층연구’ 세미나 6,7,8편(2)는 놀이와 예술교육을 통한 미적 인간학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미적 인간학의 개념과 철학을 다룸에 있어서 요한 호이징아, 로제 카이와, 허버트 스펜서, 유발 노아 하라리, 프리드리히 실러, 임마누엘 칸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같은 학자들을 통해 놀이와 예술교육을 심층연구했다. 이 밖에도 채희완 선생이 바라본 한국적 놀이와 미적 인간, 신명 등은 우리가 잊고 있던 민족미학의 단초를 되새김하는 순간이었다. 동, 서양을 넘나들며 미적 인간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동일하거나 서로 다른 시각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기회이다.



놀이와 예술교육을 통한 미적 인간학 


미적 인간학은 인간을 단순히 이성적·도덕적 존재로만 규정하던 전통 형이상학을 넘어, 감성·놀이·예술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존재로 이해하는 철학적 인간학이다. 즉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질문을 넘어 “인간은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으로 전환하며 “인간다움은 어떻게 실현되는가?”라는 실제적·교육적 문제로 확장한 관점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삶이란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화와 완성을 의미한다. 20-21세기 철학적 인간학은 삶과 유리된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역사·문화·노동·놀이 속에서 형성되는 실제적 인간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는 인간·표현하는 인간·창조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재조명하고 이때 핵심 매개가 놀이와 예술교육이다. 그 핵심에 놀이 개념이 있다. 우선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요한 호이징아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제작하는 인간) 이전에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임을 언급하며 인간 문화의 본질은 놀이임을 주장했다. 놀이의 특징은 자발적이고 자기완결적이며, 일상의 질서와 구분되는 독자적 시공간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극대화한다. 인간다움은 곧 놀이 속에서 드러난다. 결국 그는 인간을 ‘유희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이에 비해 로제 카이와는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구조 분석을 바탕으로 놀이를 네 유형으로 구분했다. 경쟁(스포츠, 시험), 우연(도박, 제비뽑기), 모의(연기, 역할놀이), 현기증(롤러코스터, 아크로바틱)이 그것이다. 놀이에는 질서와 긴장, 규칙과 일탈, 쾌감과 위험이 공존한다. 이는 인간이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는 놀이를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문명과 병리까지 설명하는 인간 현상으로 보았다.


한국적 놀이와 미적 인간


한국적 맥락에서 채희완 선생은 “한국인은 어떻게 놀았는가?”를 탐구하면서 전통사회의 특징으로 세시풍속 중심, 두레 조직, 일·놀이·굿의 일체화를 들었다. 그 예로 줄다리기, 석전, 농악, 상두질, 달구질을 언급하면서 노동이 곧 놀이이며 일하는 것이 춤이 되는 상태로 보았다. 즉, 전통 사회의 두레와 세시풍속을 통해 노동·놀이·굿의 통합 구조를 조명한 것이다. 특히 농악, 달구질, 상두질 등은 노동을 리듬화 함으로써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 상태를 형성한다. 한성준 선생은 “모든 동작은 장단을 태우면 춤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숙련된 노동은 곧 춤이 되며, 장단은 일상 동작을 미적 행위로 전환한다. 숙련공은 일하는 듯 놀고, 노는 듯 일하는 사람으로 표현되며 여기서 핵심 정서는 ‘신명’이다. 신명은 개인의 정서를 넘어 공동체적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힘이며, 감각과 생명력이 일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채희완 선생은 “신난다”라는 말은 놀이의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신명이며 민족미의식에서 신명, 신바람. 흥취에 주목했다. 특히 선생은 일상적 삶의 정서 의식, 에너지의 원천으로 신명을 설정했고 서양 예술의 두 주류인 영감 세계(인스피레이션,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와 모방 세계(미메시스, 니체의 아폴론적) 중 우리의 신명은 디오니소스적인 것, 한판, 떠들썩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더불어 산문-운문-노래와도 연관시킬 수 있고 놀이에는 어떤 형태든 신명 나는(문화 전반의 원천적 에너지라고 봄) 그 어떤 것이 있음을 언급했다. 놀이 충동은 철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 무엇이 인간을 놀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 허버트 스펜서는 개체보존, 종족보존, 유희충동을 들어 남는 에너지가 놀이로 발현된다고 보았고 유발 노아 하라리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포유류는 놀이를 통해 학습하며 놀이는 생존 훈련이며 문화 생성의 토대로 즉, 놀이는 사치가 아니라 진화적 학습 메커니즘으로 해석한다. 놀이는 문화와 역사를 생성하는 인간 고유의 능동적 활동이다. 미학적 차원에서 결정적 전환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제시된다. 그는 충동에 대한 설명에서 형식충동은 이성·도덕·법칙을, 질료충동은 감각·감성을, 유희충동은 둘의 조화로 보았다. 그가 말하길 인간은 놀이할 때 비로소 완전한 존재, 곧 미적 인간이 된다. 예술교육은 이 조화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또한 임마누엘 칸트는 저서 『판단력 비판』을 통해 미를 “이성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라고 규정했다. 즉, 미적 판단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무관심성, 자유로운 놀이 상태에서 성립하며 이는 인간이 공동감 속에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낸다. 이 밖에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놀이를 억압된 노동세계에 대한 해방 가능성으로 보았고 놀이=저항의 가능성이라 주장했다. 


현대 예술과 미적 관점의 확장


채희완 선생은 현대 예술의 동향을 살피면서 개념미술에서 실물(자연미, 신의 작품)과 실물과 똑같은 모조품(20C 콜링우드: 제작과 표현 구분)을 언급했다. 20C 중반에 와서 브릴로의 박스는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예술가가 예술 영역으로 채택한 것은 예술 작품이 되며 의미해석을 받도록 등장시켜 놓은 것이다. 이는 분석철학적 방식으로 예술을 해명하는 것이며 공인된 예술과 공인되지 않은 예술을 나누는 판단기준이다. 예를 들어 라면 박스, 찌그러트린 코카콜라 캔 등은 연상적 상상력 발휘하게 했다. 일상적인 것에 대한 미학적 관점. 사고방식에서 아서 단토는 현대 미학의 종말을 주장했다. 그는 『예술의 종말 그 이후』에서 다시 본래대로 회귀할 것인가? 더 나아갈 것인가?를 얘기하며 20C 후반-21C 초 분석철학적 관점에서 해명의 정점에 이르렀다. 그는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예술의 경계가 해체되었음을 선언한다. 예술은 해석을 요청하는 순간 예술이 된다, 즉, 미적 관점이 대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일상 사물조차도 해석의 장에 놓이는 순간 예술이 된다. 이는 미가 특정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관점과 해석의 태도임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수석, 분재, 꽃꽂이의 예를 들어 사물 자체가 이미 생명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다. 즉, 수석이나 분재가 자연미와 인공미의 경계에서 미적 대상이 되는 방식 역시 이러한 확장된 미학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채희완 선생은 무엇이 춤을 추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승생기천. 생명기운(풍수지리의 핵심)을 들었다. 그 예로 승생기 체험을 하게 되는데 리듬을 타다, 산타다, 말타다, 줄타다, 곗돈을 타다, 부끄러움을 타다, 바람을 타다, 가야금을 타다 등이 몸을 실어 노니는 것이다. 또한 기운생동이란 보는 사람도 같이 물들여진 것으로 지독한 감정이입을 말한다. 공자의 예술론과 인생론을 다룸에 있어서는 “유의, 성어학”은 공자의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유의’는 시에서 사람의 마음을 일으키고, ‘성어악’은 음악에서 사람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자가 ‘시’와 ‘음악’을 통해 사람의 본성을 기르고, 인격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 밖에도 공자는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을 굳게 지키며, 인(仁)에 의지하며, 예(藝)에 노닐어야 한다”를 논어 술이 6장에서 다뤘는데 지어도는 공자가 생각하는 바른길이고 유어예는 인간 삶의 마지막 단계로 보았다. 특히 유어예는 지덕체의 전인교육으로 예악사어서수를 들며 예(기예), 악(음악, 악은 예와 합쳐져 있음. 악가무일체의 악임, 종합예술로서의 연행예술. 음악이 덕에 포함되어 있는 것에 주목), 사(궁술), 어(말타기), 서(글쓰기), 수(셈하기)를 언급했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공자가 나이 70이 되면서 느낀 깨달음을 담은 말로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르되, 법도와 규범을 넘어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나이가 들수록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완벽한 자유를 구가하는 것을 의미했고 완전한 자유 상태, 즉 미적 인간의 경지이다. 마지막으로 화랑의 수양 방법으로 상마도의는 서로 도의를 닦는다, 상열가악은 서로 노래와 음악을 즐긴다, 유오산수는 산수 좋은 곳을 찾아 노닌다의 뜻으로 이들이 놀이를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세미나 6,7,8편(2)에서 결론적으로 채희완 선생이 말한 놀이와 예술교육을 통한 미적 인간학의 핵심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본질적으로 놀이하는 존재이다. 둘째, 놀이 속에서 이성과 감성은 조화를 이룬다. 셋째, 예술교육은 이 조화를 형성하는 실천적 장이다. 넷째, 미는 아름다움에 한정되지 않으며, 세계를 해석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놀이와 예술교육은 인간을 단순히 기능적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공동감 속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존재, 곧 미적 인간으로 형성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 따라서 그가 보는 미적 인간이란? 신명과 공동감 속에서 세계와 합일하며 자유롭게 창조하는 존재임을 밝혔고, 삶을 유희의 차원에서 긍정하며, 노동과 예술, 현실과 초월을 통합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완성은 도덕이나 이성의 극대화가 아니라, 조화로운 유희의 상태에서 실현된다. 우리는 춤미학의 기초개념을 바탕으로 21세기 이 땅에서 미학하기라는 과제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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