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러시아 디지털 매거진 <발레(БАЛЕТ)>의 승인하에 번역 게재됩니다.
포커스
Vol.128-1 (2026.4.5.) 발행
글_ 올가 우가로바(Ольга Угарова)
사진_ 미하일 빌추크(Михаил Вильчук) ⓒ 마린스키 극장

마린스키 발레단의 퍼스트 솔리스트 마리아 호레바(Мария Хорева)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대형 역할 데뷔 무대로 마침내 팬들 앞에 섰다. 무대는 레오니드 라브롭스키의 전설적인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특히 한국 출신 무용수 전민철이 로미오 역으로 첫 출연을 한 것은 더욱 뜻깊은 순간이었다. 올가 우가로바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날 무대에 감돌았던 젊음의 가벼운 숨결을 전한다.

이날 관객들은 마린스키 극장 본관으로 몰려들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대 세대의 센세이션으로 불리는 마리아 호레바가 잦은 부상 끝에 오랜만에 고향 무대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데뷔한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그녀의 파트너 전민철이 이제 막 마린스키 극장에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신예라는 점이었다. 두 사람의 동시 주역 데뷔는 관객의 긴장과 기대를 두 배로 키웠다.
두 무용수는 리허설 과정을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공연에 대한 관심을 높였지만, 동시에 발레 애호가와 전문 비평가들의 더욱 엄격한 시선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솔리스트는 각각 자신의 스승과 함께 작업했다. 마리아는 타티아나 테레호바(Татьяна Терехова)에게, 전민철은 유리 파테예프(Юрий Фатеев)에게 지도를 받았다. 이리나 콜파코바의 제자인 타티아나 테레호바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레닌그라드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역할의 형태뿐 아니라 작품에 깃든 상트페테르부르크 특유의 분위기까지 중요하게 여긴다. 그녀의 제자인 올레샤 노비코바, 마리야 쉬린키나, 레나타 샤키로바 등은 소비에트 드라마 발레의 상징적인 줄리엣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이 역할은 뜨거운 열정과 영웅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고도의 테크닉뿐 아니라 드라마적 표현 역시 필수적이다.
스물두 살의 전민철은 마린스키 발레단의 전 단장에게 리허설 지도를 받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의 전통을 체득해 가고 있다. 점프력이 뛰어나고 신체 협응력이 탁월하며 무엇보다 젊다는 점은 그가 앞으로 큰 무용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이러한 장점만으로도 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실제로 그는 한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단번에 사로잡았던 김기민의 뒤를 이을 무용수로도 거론되고 있다. 경력만 놓고 보면 이 듀오에서는 마리아 호레바가 더 경험 많은 무용수였다. 그녀의 무대 위 대담함과 자연스러움은 두 사람이 공연 속에서 조화로운 한 부분으로 어우러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호레바는 분명 이 역할에 어울리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상과 재활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그녀는 컨디션과 의지를 잃지 않았다. 휴지기 동안에도 꾸준히 체력 훈련을 이어온 덕분에, 극장에서 일곱 번째 시즌을 맞은 지금도 그녀의 무대에는 젊음과 섬세함이 살아 있다. 예전에는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던 손의 표현과 자세 역시 훨씬 부드럽고 완성도 높게 다듬어졌다. 여기에 회전이나 리프트 동작에서도 힘겨움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더해지며, 그녀는 작품의 스타일 안에서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첫 장면에서 줄리엣은 유모와 함께 등장한다. 이때 그녀는 매우 장난스럽고 활달한 소녀로 그려진다. 호레바는 자신의 줄리엣이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 빠른 움직임과 즉흥적인 행동, 속도감 있는 동작 속에서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 이러한 활발함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연기가 다소 거칠어 보이는 순간도 있지만, 어린 소녀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다.

파리스와의 첫 듀엣에서는 젊음과 삶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 줄리엣은 약혼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파리스와 결혼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로미오와의 이별 이후, 그리고 로렌초 신부를 찾아간 뒤부터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불행한 사랑에 빠진 그녀는 부모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파리스와 다시 춤을 출 때도 이런 감정이 드러난다. 이제 줄리엣은 더 이상 무심하지 않다. 그녀는 약혼자의 접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섬세한 몸짓으로 이를 표현한다. 또한 아버지의 손에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는 순종의 태도를 보이지만,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때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 손길을 피한다. 완전한 복종은 아니라는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무모한 어린 소녀였던 줄리엣은 로미오를 만난 뒤 분명히 성장한다. 호레바는 표정뿐 아니라 몸의 움직임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이전까지 신체적 힘이 강조되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연기와 감정 표현이 중심이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만남 장면에서 두 무용수의 움직임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정 앞에서의 두려움과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의 상호작용은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어느 정도 힘을 요구하는 발코니 장면 역시 두 사람 모두 안정적으로 소화해 냈다. 그러나 그 장면에서 드러난 것은 섬세하게 싹트는 사랑이라기보다, 아직 어린 두 인물이 처음 겪는 새로운 감정에 대해 느끼는 들뜬 기쁨에 가까웠다.
아직 감정 표현이 더 필요해 보였던 두 사람은 3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역할을 진정으로 살아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줄리엣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이별 장면에서는 이전 장면들에서 두드러졌던 마리아의 큰 움직임의 진폭이 사라지고, 대신 감정의 체험이 중심이 된다. 여기에서 그녀는 줄리엣의 영혼의 움직임, 즉 사랑하는 이를 향한 깊은 애정에서부터 그와 이별해야 하는 운명,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끝없는 슬픔과 서로의 결심까지 모두 표현해 냈다.
이 듀엣에서 두 데뷔 무용수는 자신의 인물을 가장 완전하게 펼쳐 보였다. 그들은 단지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랑과 용기의 힘을 이야기했다. 마지막 묘지 장면은 이들의 첫 대형 데뷔가 성공적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공연은 절대적인 젊음과 뛰어난 기술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전민철이 연기한 로미오는 겸손하고 진실하며 정의롭고 순수한 감정에 열려 있는 인물로, 공연 내내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영웅적 서사는 오히려 호레바가 춤춘 줄리엣에서 더 많이 드러났다. 그러나 두 데뷔 무용수가 보여 준 순수하고 깨끗한 연인은 작품 속 격렬한 세계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앞으로 두 무용수가 발견해 갈 새로운 감정의 색채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감동적인 해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원문
Мария Хорева и Минчхоль Чон: Двойной дебют в балете «Ромео и Джульетта»
디지털 매거진 <발레(БАЛЕТ)> 2026년 3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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