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안무를 위한 성실한 과정
<삼인무 교육부>(2015)
‘안무 리서치’에서는 이번 호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인터뷰를 기획해 보았습니다. 안무가에게 5분 동안 ‘자신의 안무 작업을 나타낼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마인드맵으로 요청한 후, 그가 직접 작성한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안무가의 안무 방법론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든 인터뷰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하여, 유튜브 채널 ‘댄포코TV’를 통해 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댄포코TV 바로가기 ▶▶▶
<삼인무 교육부>, <먹지도 말라>, <삼고무> 등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이 엿보이는 작품들로
자신의 안무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켜온 안무가 이세승을 만나보았다.
사회적 이슈를 자신만의 춤언어로 발화하여 무용계의 이목을 끈 그는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안무가 중 하나이다.
탐구하는 자세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이세승의 안무 철학에 대해 들어보자.
첫 번째 키워드는 “즉흥”
Q: 가장 먼저 적으셨는데, 대표적인 움직임 방법론 중의 하나인 ‘즉흥’이 작업에 녹아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A: 구체적으로 저는 ‘접촉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활용한 방법론에 흥미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저의 안무 작업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낳는다고 말씀드리긴 조심스러워요. 작업을 준비하면서 주로 참여자들끼리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움직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웜업과 아이스브레이킹의 기능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접촉즉흥은 기존의 고정성을 띤 안무 작업과 다르게 접촉즉흥을 하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져요. 이를 통해 무용수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그 과정 자체가 저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Q: 컨택즉흥집단 ‘쌍방’을 벌써 9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어떻게 흘러오게 되었나요?
A: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학교 내 스터디였어요.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는 공연을 위함이 아닌 움직임 자체를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후 비전공자분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개방하여, 이제는 커뮤니티댄스와 비슷한 형식이 된 거 같아요. 비전공자분들과 함께 하면 조금 더 허심탄회하게 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Q: ‘쌍방’에서 진행해온 워크숍이 본인의 안무 방법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나요?
A: 다양한 사람들과 워크숍을 하면 몸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실험적인 움직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러한 워크숍 역시 리서치 과정의 일부이고 제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여전히 리서치와 안무 작업이 따로 분리된다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이러한 안무 과정이 어떻게 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恨)>(2020) ⓒ윤혜린
두 번째 키워드는 “역사”
Q: 안무의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나요? 또한 영감 혹은 영향을 받고 있는 활동이나 분야가 있다면요?
A: ‘역사’라는 키워드를 통해 제 전반적인 창작 활동의 근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생각한 역사는 무용사나 예술 사조 같은 커다란 역사부터 한국, 정확히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무용사회에 몸담고 있는 저라는 개인의 작은 역사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속한 무용계라고 하는 사회에 관심이 많아요. 결국에는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다루었을 때 자연스럽게 외부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크고 작은 역사에서 출발해 스스로 어떤 시간을 거쳐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주제가 작업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Q: ‘역사’에서 출발해 ‘전통’과 ‘이론’이라는 키워드를 적어주셨는데, 이는 어떤 맥락으로 안무에 적용되나요?
A: 제 작업이 ‘전통’에 뿌리 내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예술가로서 혹은 개인으로서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찾아가고 있어요. 역사가 문서화된 기록으로 남으면서 이론화되고, 여러 매체를 거쳐 기록이 쌓이면서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추상화될 수 있는 영역이 생략되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안무는 어떤 실천에 가까운 형태일 텐데, 나는 무슨 실천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이론은 실천과 상호작용되면서 시너지가 일어날 거라는 믿음도 남아 있어요. 그 또한 제 숙제겠지만요.
Q: 그럼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떤 방식을 거쳐 본인의 작업에 녹아들게 되나요?
A: 제가 관심 있는 주제나 소재에 연결점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인터뷰’ 방식을 자주 사용해요. 그리고 혼자서 녹취를 풀고 시간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리서치를 지속하죠. 2015년 <삼인무 교육부>에서 아카이빙 방식으로 심도 있는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2019년 <삼고무>는 무용계 저작권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들을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풀어냈어요.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다르듯,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겼어요.
올해 모다페에서 선보일 신작 <한(恨)>은 우리 고유의 정서라 일컫는 ‘한’을 오늘날의 움직임으로 풀어내보고 싶어요. 이전 작품들보다는 신체의 움직임에 충실할 예정인데,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어요.
<삼고무>(2019) ⓒ이강물
세 번째 키워드는 “책임”
Q: ‘책임’이라는 키워드를 적어주셨어요, 안무가로서 어떤 부분에서 책임감을 느끼시나요?
A: 책임에 관한 것은 요즘에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주제인데, 극장이나 무대를 점유한다는 데에는 그만큼의 책임감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안무가로서 ‘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그에 맞은 역할은 무엇일까, 안무가인데 내가 무용수인 척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업 하나만을 충실히 끝내는’ 그 지점까지가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면 안무가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Q: 안무 과정이나 결과물에 있어서 ‘책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아무래도 제가 가장 관심을 두고 많이 하고 있는 방법론 중 하나가 ‘즉흥’인데, 이를 무대 위에 옮겼을 때 무책임해지기 쉬운 문제점들이 발생하더라고요. 즉흥에서 비롯된 움직임에 어떻게 ‘고정성’을 부여할 것인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해야 안무가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건지 고민이 돼요. 여전히 제일 어려운 부분이고요.
컨탭즉흥집단 ‘쌍방’ 워크숍
네 번째 키워드는 “긍정”
Q: 마지막 키워드로 ‘긍정’을 적으셨는데, 어떤 의미로 적으신 건가요?
A: 저도 어느덧 30대 중반이 넘어가는데, 이제는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외부의 지원사업이나 기획공연에 작품을 맞추다 보니, 스스로 방향성을 잃고 지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제 자신과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인간관계도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 같고, 안무 과정 자체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안무 작업에서 적용해보고 싶은 리서치 방법이 있다면요?
A: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기 위한 리서치에 집중해보려고요. 작품 내에 사회적 의미를 담지 않더라도 인간의 몸을 통해 나오는 움직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가보려고 해요.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그런 작업들을 이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글_ 서현재(에디터) / 윤혜린(콘텐츠 에디터)
사진제공_ 이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