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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리서치

움직임 리서치 기행 - 서울 창신동 봉제골목을 방문하다 -

 지난 11월 방한 중인 독일 출신 안무가 빅토리아 하우케(Victoria Hauke)를 만났다.

 그는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 참여작가로서 안무워크숍을 진행하는 한편, 개인적 관심을 살린 짧은 리서치를 수행하고 돌아갔다. 후자에 있어, 나는 지역을 안내하고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보조자 역할을 자청했다. 빅토리아는 조사대상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요약하면, 【1) 한국에서의 2) 생활이나 직업에 기반해 온 동시에 3) 기계화, 현대화에 의하여 점차 소멸되고 있는 움직임들】이었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었던 그는 좌판에서 콩껍질 벗기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신체의 한 부분을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전신이 수반되는 점을 언급하며, 그것이 무용적 움직임과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했다. 시장을 방문했을 때 손만두를 빚는 사람들, 머리에 쟁반을 이고 다니는 아주머니를 본 것도 흥미로웠다고 예를 들며,

 "과거엔 사람의 몸이 일일이 움직여 생산한 것을, 지금은 기계 조작으로 대체하잖나. 인간의 몸에서 지워져 가는 움직임들이 있다. 한국에선 어떤 게 그런 것들일지 궁금하다."

 라고 밝혔다.

 일상의 단면을 관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네탐방이었다. 이러한 지역조사(site research) 방법은 커뮤니티아트 분야에서 접해 온 것이지만, 미술가가 아닌 무용가의 시선으로 도시와 골목의 속살을 파고드는 일을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었다. 나는 서울에서 한국적 장소특정성과 수작업 공간이 남아있는 동네로, 동대문시장의 배후인 창신동을 떠올렸다. 봉제공장이 즐비한 골목들을 오토바이 행렬이 누비는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안무적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까.

 "미싱사, 시다, 객공팀 모집" 등의 표지판을 내걸고 있는 수많은 문들 중 한 곳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댓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다림질과 가위질이 한창이었다. 작업에 방해된다고 쫓겨나진 않을까 했던 염려와는 달리, 구경과 촬영을 허락받았다. 한 켠에서 청년이 원단에 긴 자, 패턴 본을 대고 치수를 재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온몸으로 리듬을 타듯 다리미를 밀고 당기며 김을 뿜었다. 기계처럼 정확하고 날랜 모습이었다. 빅토리아는 그 장면들을 가만히 캠코더에 담았다. 나는 옆에서 스틸 사진을 찍고, 직원들이 이방인을 덜 어색해 하도록 괜한 잡담으로 너스레를 떨어 보곤 했다.


 우리는 줄지은 공장들의 문틈 안을 들여다보며 창신시장 방면으로 향했다. 나는 빅토리아가 안으로 들어가 보기 원하는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그는 극히 정적인 작업을 하는 곳으로부터 과감히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몇 곳의 봉제공장에서는 주름 가공, 재봉질, 다림질처럼, 개입되는 신체 영역이 넓고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그의 캠코더에 담겼다. 빅토리아는 작업자의 신체에만 단편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들에게 주력 분야, 평상시 일과 등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며 행위를 둘러싼 삶에도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시장에 이르러 재래식 방앗간을 발견한 우리는 들기름 한 병을 구입하며 내부를 구경했다. 주인장은 마른 고추가 가득 담긴 커다란 대야를 바닥에서 기계 아가리 위로 들어 올려 엎고, 쏟고,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고추가 가루로 다 빻아지자 자루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기까지의 과정은 근일 안에 흔적을 감출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빅토리아에게 리서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춤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기록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작품으로 가공하더라도, 수집한 움직임을 마치 팬터마임처럼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록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따라하면서 그 안에 내재된 의미나 속성을 떠올려 보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상, 발상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움직임을 춤의 형태로 직조하는 것에 가깝노라고 설명했다.


 이번 리서치를 계기로, 그의 춤에 대하여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일부를 아래에 간략히 옮긴다.

김보슬: 당신의 작업을 꾸준히 관통하는 주제가 있는가. 
빅토리아: 특별히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단순히 음악, 미술, 건축 등 이질적인 장르를 한 작품 안에 병치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김보슬: 화학적 용어로, 혼합이 아닌 화합을 말하는 것인가. 각 요소가 본래의 성격을 벗어나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말이다. 우유가 치즈로 변하듯... 
빅토리아: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춤에 국한되지 않는 몸의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태극권과 요가를 20년 넘게 수련해 왔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움직임, 신체-공간-사물 간에 작용하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김보슬: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빅토리아: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레지던시에 지원했다. 함부르크 캄프나겔(Kampnagel) 극장 K3안무센터 주소록에서 서울무용센터를 보고 알았다. 기본적으로 스튜디오 안에서 경험하는 타문화는 항상 흥미롭다. 또한 한국적 신체가 가지는 습관, 관습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한국은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나라 아닌가.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탈락한 몸짓은 무엇일지... 

김보슬: 그런 몸짓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 
빅토리아: 일상적이거나 직업적인 몸짓은 그 자체로 사람의 정체성이며, 자부심과도 결부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주입하기 힘든 것이다. 특정한 장소, 시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그런 신체적 전문성들이 점점 소멸되어 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김보슬: 한국에서 짧은 일정동안 그런 것들을 찾기가 쉬웠나. 
빅토리아: 쉽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두 빚기, 국수 뽑기처럼 식품 가공과 관련된 일이 제일 쉽게 눈에 띄었다.  

김보슬: 이번 리서치를 가지고 앞으로 한국 무용수들과 작품화할 계획이 있는가. 혹은 다른 도시에서 연작 리서치도 할 생각이 있는가. 
빅토리아: 이번 리서치를 작품화할 계획은 아직 없지만, 희망사항이다. 앞으로 고민해 볼 일이다. 다른 도시에서 연작 리서치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당분간은 일정이 빠듯하다. 

김보슬: 리서치에 관한 생각을 좀 더 듣고 싶다. 안무가로서 리서치를 늘 직접 행하는가. 한국에서는 안무에 선행하는 조사, 개념화 작업 등이 드라마투르그에게 요구되면서 혼란을 빚기도 한다는데. 
빅토리아: 독일에서도 무용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모호할 때가 많다. 독립된 영역으로 안무와 협업 관계에 놓아야 하는지, 안무의 보조적 수단으로 두어야 하는지, 해석이 엇갈리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러나 리서치 자체는 명확하게 안무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전적으로 내가 직접 하는 편이다. 내가 한국에서 확인하지 못한 곳들을 당신이 대신 촬영해서 보내준다 했을 때, 사양한 것을 기억하는가. 조사 현장을 직접 경험해야만 생생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자료를 통해 전달받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거나, 타인의 주관이 섞인 것이라 사실상 작업 과정에서 쓸모가 없다. 그리고 독일의 예술가들도 대체로 재정이 넉넉지 않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직접 하는 것이 유리하다. 

김보슬: 한국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빅토리아: 당연히 언어적인 부분이었다. 자유로운 대화는 리서치 질에 영향을 끼친다. 만두 가게의 경우, 작업자들이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해 왔는지 일행이 질문해 주었다. 대부분 하루 평균 열 시간 씩, 30-40년 간 했더라. 놀라운 일이다! 공정 별로 역할이 분담되어 여러 명이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였다. 여러 몸들이 기계적 리듬으로 엮인 것이다. 그렇지만 일하는 동시에 말하고 웃는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이다. 이런 걸 대화 속에서 확인하고 이해하면서 보면, 움직임도 다르게 해석된다. 거기서 받는 생동감, 영감을 가지고 창작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빅토리아 하우케 www.victoriahauke.de
열아홉 살에 무용 전공을 결심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현대무용에 입문한 이래, 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를 근거지로 하며, 독일, 인도, 러시아 등에서 작업했다. 안무, 시각예술, 사운드의 실험적 결합을 추구하고, 수영장, 도심 유휴공간 등 비극장 환경을 적극 활용한다.




글_ 김보슬(자유기고가/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전공 M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