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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리서치

안무가 김설진 ‘사람·삶·관계·관찰’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춤이 되다                                                 

ⓒBAKI  



  ‘안무 리서치’의 인터뷰 진행은 안무가에게 ‘자신의 안무 작업을 나타낼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마인드맵으로 요청한 후, 직접 작성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안무가의 안무 방법론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2008년 벨기에 피핑톰무용단에 입단 후 세계무대를 누비며 춤 이상의 신선한 자극을 보여준 김설진, 
그의 자유로운 발상은 2014년 크리에이터그룹 '무버'를 창단하며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끊임없는 움직임 언어의 확장을 시도하는 그의 모노드라마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린


첫 번째 키워드는 "사람"

 
 Q: 가장 먼저 ‘사람’을 적었는데요.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제가 죽고 나면 결정이 나지 않을까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죠. 제가 정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 작업에 있어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 간단해요. 저도 사람이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니까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을 제일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다른 것도 잘 모르지만요. 결국에는 사람 공부를 하고 싶은 게 가장 큰 소망이에요


 Q: 안무하는 사람으로서 이것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요?

 A: 척하고 싶지 않아요. 멋진 척, 있는 척,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작업하면서 느낀 역사에 대한 생각은요?

  A: 예전에 어느 분께서 "앞으로 한국적인 걸 좀 더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한국적'인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죠. 여기 세종문화회관 주변만 살펴뵈도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들이 여럿 있는데요. 점심시간에는 최신 스마트폰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퇴근 후에는 바로 뒷골목으로 달려가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먹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거예요. 역사란 자로 잰 듯 나눠지는 것이 아닌 흘러온 그대로 공존하는 것이죠.

  저도 어릴 때부터 서편제도 좋아했고, 동시에 MC해머랑 투팍도 좋아했고, 다시 공옥진 선생님의 춤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까요. 저의 역사도 그렇고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모두 복합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제가 성장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자연스레 겪어온 환경들 모두 저라는 사람에 포함되어 있고 그게 곧 저의 역사니까요. 


<섬>(2020)


두 번째 키워드는 "관계"


  Q: 솔로 작업부터 무버(MOVER), 해외 단체까지 안무 영역이 다양한데, 차이가 있다면요?  

  A: 결국에 모든 지향점은 비슷한 거 같아요. 혼자일 때는 게을러지기 쉽고 심심한 반면에 온전하게 저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죠. 무버는 춤작업이 아니어도 같이 나이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인데요. 애초에 무용단이 아니라 크리에이터그룹으로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하나의 작품 혹은 단순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소통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끈끈한 관계예요.

  피핑톰에서 초반에 단원으로만 있을 때는 쉼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마구 어지러놓을 수 있었다고 할까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능동적 수동이 되게 재밌어요. 부담 없이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실제 무대에서 펼쳐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무용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세분화되어 잘 갖춰져 있는 대형 컴퍼니다 보니 가능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다 안무가와 출연자들 사이의 소통을 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을 때는 판을 벌리기도 해야하고 때론 책임도 져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Q: 안무 작업 혹은 작품에서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나요?


  A: 하나의 장면을 만들 때 갑자기 번뜩이며 떠오른다기보다는 직접 겪거나 주변의 실제적인 관계들을 계속 확장하고 상상해보는 것 같아요. 그 관계가 다른 상황에 놓이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비틀어 보고 있어요. 


  작품 안에서는 무용수들에게 어떤 캐릭터로서의 역할보다는 관계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부여해요. 그 관계는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것뿐만 아니라 무용수의 신체와 물체 혹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해당되고요. 예를 들어서 청소기가 빨아들이는 느낌인지, 자석이 당기는 건지, 그게 같은 극인지 다른 극인지 등등 구체적인 디테일을 어마어마하게 부여하는 편이에요. 관계성을 파고들다 보면 더욱 풍부한 질감을 찾을 수 있더라고요.





세번째 키워드는 "삶"


  Q: ‘삶’ 그리고 시간과 죽음을 같이 적어주셨는데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A: 거창하게 쓴 건 아니고요. 삶 안에 예술 혹은 모든 작업들이 포함되잖아요, 삶을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은데 저도 인간인지라 잘 안 되더라고요. 삶과 제가 하는 작업들을 어떻게 잘 융합할 수 있을까 끝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인간이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나름 많이 했었는데요. 그게 죽음이었어요. 주변에서 죽음은 굉장히 흔한데, 저만 못 겪었을 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죽음을 소재로 작품도 많이 했어요. 작품으로 풀어내고 나면 조금이나마 해소된 느낌이 들어 그랬던 것도 같고요. 그러다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왔어요. 그런데 그건 제 착각이었고, 결국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건 ‘기억’이었어요. 그런데 기억은 굉장히 오류가 많잖아요. 그 자체로 왜곡되고 어쩌면 모순덩어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삶인데, 과연 이 안에서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좋고 싫은 건 말할 수 있지만, 옳고 그르다에 대해선 쉽게 못 하겠더라고요.

  삶이라는 거 자체가 끊임없이 '이거야!' 하고 선입견이 생겼다가, 다시 '아닌가?' 하는 순간들이 계속 반복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순간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려요. 끝없이 깨지고 질문할 수 있는 거, 그런게 너무 재미있어요.


  Q: 창작자의 삶이 작품으로 이어지고, 작품은 또 다른 삶의 영향을 주는데요.

  A: 작품으로 어떤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혹시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해보신적 있나요? 우리 같이 생각해봐요.' 이 정도의 화두를 던지고 싶어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아도 혹은 실질적인 말이 없어도 그 정도의 대화를 하고 싶어요.

  그러다 작품을 본 누군가는 살면서 제가 건넸던 질문이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스스로의 답을 찾다 보면 분명 조금씩 삶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런 변화가 여럿 모이다 보면 결국 세상도 달라질 거라 믿고 있어요. 저나 제 작품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네 번째 키워드는 "관찰"


  Q: 평소 무대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움직임을 볼 수 있는데요. 그 시작은 어떤 모습인가요?​

  A: 단순한 관찰에서 시작해 공상까지 이어지고 그런 과정이 어딘가 모르게 겹쳐지면서 실제 작업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건 왜 저렇게 생겼을까? 만약 다른 모양이었다면 어떨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편이에요. 어쩌면 안무 작업과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도 자주 거기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 ‘관찰’은 아이들이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일종의 놀이에요. 연습실에서도 춤만 추지 않거든요. 온갖 호기심을 직접 시도해보며 정말 이상하리만치 다양하게 놀고 있어요. (웃음) 



  Q: 관찰과 다양성의 관계는?


  A: 어떤 대상이든 그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 선행되고 존중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어떤 분야든지 그 파이도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유행을 쫓아가는 것도 인정하되, 정해진 규칙과 답으로 바라보지 않는 게 중요하죠.



  Q: 지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


  A: 솔직해지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게 이게 맞는지, 좋아하는지, 재밌어 하는 건지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어요. 그 자체에 기쁨이 있으면 실패해도 그 이유를 찾아갈 수 있는데, 남들이 원하는 틀에 맞춰가다 보면 성공을 해도 모르고 지나쳐요. 그러면 금방 무너지기 쉽고요. 꾸준하게 관찰하면서 발견하고 거기서 기쁨과 재미를 찾으면, 실패해도 또 할 수 있어요.   




글_ 서현재(에디터) 

영상_ 윤혜린(콘텐츠 에디터)

사진제공_ 김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