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안무리서치

안무가 박기량 ‘적극적 소통·무용수·음악·고증’

 

끝없는 탐구로 써내려가는 전통의 재창작                

 

 

 

ⓒ강선준 

 

 

‘안무 리서치’의 인터뷰 진행은 안무가에게 ‘자신의 안무 작업을 나타낼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마인드맵으로 요청한 후, 직접 작성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안무가의 안무 방법론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댄포코 TV바로가기▶▶▶

[안무리서치|인터뷰] 외국인이 좋아하는 작품 만드는 방법 | 박기량


 

 

“하얀 고깔을 쓰고 붉은 띠를 두른 그녀, 프랑스의 카르멘이 되다.”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작업하며 한국춤의 새로운 현대화를 써내려가는 안무가로 성장하고 있는 박기량.

전통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우리춤 위에 자신의 삶을 담아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린 

 

 

첫 번째 키워드는 “적극적 소통” 

 

Q: ‘적극적’인 소통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안무 작업에 있어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나요?  

 

A: 제가 말하고자 하는 ‘적극적 소통’은 일종의 ‘적극적 개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안무가의 아이디어와 구성에 맞춰주는 무용수도 너무 훌륭하지만, 저는 좀 더 자신이 느낀 감정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을 선호하더라고요. 안무가와 무용수라는 관계를 넘어서 공동창작자로서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때, 원활한 진행은 물론이고 만족스러운 결과물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 안무 스타일인 것 같고요. 무용수들과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깊이와 색이 뚜렷해진다고 믿고 있어요. 적극적으로 작품에 들어와주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동료들과 작업할 때 비로소 제가 상상하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어요. 



Q: 작업자들과의 소통 이외의 관객들과의 소통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A: 프랑스에서 씻김을 주제로 한 개인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막연한 오리엔탈리즘이나 샤머니즘에 대한 호기심인가 했는데, 결론적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세계관이 다르더라고요. 즉흥으로 레퀴엠 연주에 고풀이를 하면서 관객들한테 고를 잡게 하고, 같이 풀게 했었는데, 관객들의 참여도가 너무 훌륭했어요. 낯설지 않을까 우려했던 우리 문화를 함께 즐기는 적극적인 관객들을 보면서 많은 응원을 받았어요. 전통공연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Printemps(봄)〉(2019), 국립무용단 제공


두 번째 키워드는 “무용수”

Q: 오랜 기간 국립단체의 단원으로서 활동하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고 돌아왔는데요. 그곳에서의 삶이 작품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안무가로 성장함에 있어 받은 영향이 있다면요? 

A: 한국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다 온 것 같아요. 정말 행복한 일탈을 하고 왔어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올 곳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함 없이 충분히 즐기고 느낄 수 있었어요.

세계 각국의 댄서들과 함께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고, 조세 몽탈보의 안무 과정을 보면서 제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댄서들은 각자 추고 싶은 춤을 추고 서로의 리듬에 자유롭게 얹어보는 일종의 놀이이자 실험에 가까운 연습이었는데요. 그걸 바라보는 조세는 자연스럽게 작품의 한 장면으로 녹여내더라고요. 분명 그가 정확한 키워드를 제시하지 않았는데, 각각의 요리가 모여 결국 화려한 디너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그런 코드들이 저한테도 잘 맞지 않았나 싶어요. 


Q: 같이 작업하는 무용수들을 선정할 때 고려하는 부분은요? 

A: 평소에 무용수들을 많이 관찰하는데, 여기서부터 작업을 위한 리서치 과정의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들의 몸에 밴 제스처라던가 일상의 장난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아주 찰나의 순간들을 캐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미 머릿속으로는 무대 위에 그 무용수가 비춰진 모습과 동시에 배경에 등장할 영상까지 쭉 그려져요. 

춤과 안무에 있어 영감을 받는 부분이 음악과 무용수인데요. 어떤 음악을 딱 들었을 때는 ‘춤추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흥미로운 무용수를 발견하면 ‘작업하고 싶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라요.



ⓒ강선준


세 번째 키워드는 “음악” 

Q: 안무 작업에서 음악적 이해, 영감에 대한 생각은요?

A: 안무가와 무용수 모두 음악에 대한 이해와 각자의 해석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한국춤에는 정악, 민속악, 무속음악 등 정말 많은 장르가 있는데, 어떤 음악에 있어서도 자유롭게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안무가가 되고 싶어요. 

춘앵무의 도드리에 맞춰 정확하게 춤추면서 느끼는 희열이 있다면, 속박을 벗어나고 금기를 깨버리는 일종의 해소감에서 오는 희열도 있겠죠. 저 또한 거기서 어떤 필(feel)을 느끼고요.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음악을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요?

A: 첫 번째로는 세계 각국의 댄서들이 모여서 한국의 전통 음악으로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들의 몸에 내재된 리듬과 우리나라의 장단이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춤과 문화로 확장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두 번째로는 오리지널 씻김 음악을 라이브로 한 창작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2009년에 안무한 <축제>라는 작품에서 반주음악을 사용했었는데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제 박사 논문의 주제이기도 한데 무대 위에서 불교와 무속의 충돌과 습합을 모두 보여주고 싶어요. 라이브 연주와 함께 실제 스님과 무녀가 주고받는 소리와 분위기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 같아요. 





네 번째 키워드는 “고증”

Q: 마지막 키워드로 ‘고증’을 적어주셨는데요. 

A: 제 안무 작업에 있어 ‘고증’을 꼽은 이유는 창작 작업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리서치이자, 작품에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얕게 공부하고 흉내내는 것에 그친다면, 결국엔 제가 작아지고 부끄러울 것 같아서 학문적인 연구도 이어가고 있어요. 남을 설득하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는 저부터 납득할 수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Q: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삶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 같은데요. 전통과 창작을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오는 안무가로서 어떤 소신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씻김굿을 하는 집안의 사람으로서 제가 받은 유산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에 따른 사명과 책임은 물론이고, 이제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더 고민하고 스스로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진도씻김굿에 있는 여러 무속춤들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제게는 또 다른 재미로 느껴져요. 물론 전통과 창작의 영역 어느 하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지만, 각각 다른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요. 제가 살아온 삶 속에 그 장단들이 자연스레 녹아 있기 때문에 저는 익숙하고, 그러다 보니까 변형, 재구성, 재창작, 융합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발굴하고 찾아가고 있는 무속춤들이 고증 절차를 거쳐 재창작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Q: 창작 작업에서 움직임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요? 

A: 한국춤의 호흡과 전통적인 사위에 기본을 두고 있어요. 몸의 흐름, 결, 방향을 역행하지 않는 움직임을 추구하면서, 한국춤의 특징적인 호흡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어요, 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만드는 춤사위로부터 경각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수련의 시간들이 더욱 단단한 움직임을 만들고, 제 안무 작업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글_ 서현재(에디터) 
영상_ 윤혜린(콘텐츠 에디터)
어시스턴트_ 정다은(에디터)
사진제공_ 박기량, 국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