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형성된 남다른 거리, 공간 개념이 반영된 김형민 안무가의 다양한 작품에는 검열, 탈북자를 통한 디아스포라, 규칙이라는 방법론을 사용한 게임과 플레이라는 주제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마치 서바이벌 게임 속에 놓여있는 삶의 모습을 작품에 녹여낸 이 안무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지금부터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 알아본다.
정: 안녕하세요! 이번
김: 진짜 오픈 협업, 모두가 연출로서 동등한 역할을 한 것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였어요. <검열>이라는 작품에서 조명의 경우는 우연히 학교에서 리서치를 하다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조명이 꺼져버리는 걸 보면서 모션센서 라이트를 가지고 작업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모션센서 라이트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이때 조명 디자이너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하는 오픈 디스커션을 하게 되었어요. 조명 디자이너가 이 부분에서 자기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이것이 예술가의 엄청난 예술적 결정이고 스테이트먼트라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작업을 할때는 모두가 무엇을 꼭 해야한다기 보다 역할에서 빠지는 액션을 통해서도 협업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정: 이번에는 완벽한 오픈 협업이라고 하셨는데 그전의 안무작업 방식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 엄청 달랐어요. 어떻게 해야하지? 예술에서 민주주의는 허용될 수 없다. 독재여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나 너무나 많이 배웠고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런 셋업으로 다시 작업을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민주적으로 (협업을) 하겠다는 결정 때문에 내가 말하는 만큼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내 이야기가 투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만큼 상대의 의견도 수용해야 했어요. 엄청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어요. 내가 보기에 불가능한 것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해야하잖아요. 나의 고정관념이- 나만의 작품을 구성해가는 방법들이 고인물 같이 갇혀있었는지- 얼마나 강하게 박혀있는지 깨닫는 과정을 매시간 겪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상대가 주장한 것이 나의 예상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방법을 택했더니 너무나도 보석 같은 방법론들이 보였어요.
정: 민주적 결정이라는 말이 신선합니다. 서로 간의 긍정적인 충돌의 과정을 설명해주다면요?
김: 예를 들면, 작품의 전 과정 ‘모든 챕터의 모든 장면마다 연출의 규칙을 주사위를 굴려서 결정을 해야하는데 4시간의 공연 순간마다 계속 끊겨야 하고 이렇게 끊어지며 작품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관객은 왜 무의미하게 주사위 던지는 순간들을 지켜봐야하는지, 우리도 그 의미를 찾지 못하는데’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죠. 제가 주장했던 것은 우리에게 24개의 챕터가 있는데 연결되는 부분의 흐름을 -오가닉하게- 따라 방법을 만들자는 것이였어요. 그러나 저의 주장 역시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었죠. 저에게는 스무드하고 오가닉하지만 상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의논 끝에 우리 모두가 서로 5분이라는 시간과 24개의 챕터가 적힌 카드를 재배열하는 방식이라는 것에 동의를 했어요. 5분 후 마지막에 남은 컨텐츠에 대한 수긍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투영된 방법론에 대한 수긍이였죠. 민주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론을 찾은 것이 신선했었어요. 이런 모두가 동의하는 방법을 얻지 못했다면 1/4는 김형민의 방식, 나머지는 각자의 방식이라는 끼워맞추기 식의 작업이었을 거예요.
정: 안무가님은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지요?
김: 조심스러운데요. 저는 제 작업만 중요하다는 차원은 아닌데 관객이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관객이 이해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질문하는 바를 명확하게 질문하고 이런 담론을 펼쳐놓고 사라지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방향으로 제 입장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예술가의 입장은 이해시키고 설명하기 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명확하게 하고 필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 4시간의 공연 길이는 일반적이지 않은데 관객 반응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작업을 시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 사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 시대의 흐름에 거스른다는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었고, 제 세대도 그렇고 제 아래세대도 그렇고 이제 3초 내에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 그런 삶의 패턴이 되었쟎아요. 4시간이라는 시간은 정말로 긴시간이죠. 이 시간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페스티벌에 초대되었고 한국으로 이주하고 팀과 처음 작업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난해한 작업을 해서 괜찮을까 하는 리스크를 계속 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상 작업하는 과정에 4시간이라는 공연시간을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모든 구성원들이 이것은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했었고 저의 입장은 인스턴트한 사회의 패턴을 거슬러 가보는 것, 당연히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것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거슬러 보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저에게 크게 와 닿았던 문장이 “경제가 아직 사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루함이다” 라는 것인데 이게 예술이 다루어야하는 어떤 것이라고 마치 예술가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 같아요. 저도 예술가로서 저의 작품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많이 불려졌으면 좋겠지요.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한 사회의 흐름을 조정하는 중심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지루함이라고 하는 것은 더이상 사람들이 관심없어 하는 것 하지만 몽글몽글 피어있는 것들, 가장자리에 있는 것들, 이것이 예술이 다루어야 하는 것들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긴 시간때문에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도 망설여졌어요.
정: 이번 작품에서 game and play라는 컨셉을 규칙이라는 것과 연결해 네명의 연출가가 함께 쉽지 않은 실험하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작업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요?
김: 이번 공연의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데 뭔가 부족한 거예요. 우리가 Under fragility라는 컨셉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모두 다 걱정하며 그리고 헤어졌어요.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서 역할에서 벗어나기 규칙으로 무용수가 나가고 one body left 라는 규칙 아래 제가 남았을 때 자꾸 가리고, 감추지 말고 작품의 이 명확한 룰을 내가 진짜로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이 게임을 정말로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연습과정에 ‘아 알몸이 나가야 하는 장면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는데 감히 그걸 실행할 의견을 내지도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데 제가 벗게 된 거죠. 저에게는 굉장히 Fragile 한 순간이였어요. 내가 이 작품을 떳떳하게 해야한다면 규칙을 지켜야하기에 결혼 반지도 빼고 역할에서 벗어난 몸을 실현한 거죠. 그리고 공연이 다 끝나고 관객들이 떠났는데 현장 분위기가 어두운 거예요. 극장의 규율로 인해서 제가 옷을 벗는 것은 금지된 행위였던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하고 있는데 이것을 내일도 할 것인지 질문을 해요. 나름 예술적인 행위로 과감한 시도를 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너무 민망해졌어요. 작품을 보호하고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내일도 할거면 사전에 알려야 한다고. 이해는 하지만 그런 대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내일 할지 안할지 모르겠고, 계획되지 않았고. 극장에서는 사전에 고지 없이는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만약에 누가 항의를 하면 대응을 하기로 마무리를 하고 그 다음날 공연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고민으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정: 첫날 그런 해프닝이 있으셨는데 다음 날 공연은 어떻게 진행하셨는지, 이렇게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흥미롭습니다.
김: 그러면서 규칙 중에 지킬 수 없는 규칙이 있구나, 절대로 지키면 안되는 규칙이 있구나 그리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규칙도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하면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이건 말이 안되는 장면이고 말이 안되는 규칙들이 난무하고 있다, 어제 내가 규칙을 지키려고 했는데 나의 행위는 금지된 행위였었고 이런 상황에서 규칙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고, 규칙이 규칙을 지키지 말라는 전제가 존재하는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규칙을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두번째날 공연에서는 벗는 장면이라고 상상하시라고 하면서 그 장면을 마무리 했어요.
정: 참으로 안무가님에게 중요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얽혀 있기도 하고, 팬데믹 기간에 학생들과 줌으로 집중해서 작업하시기도 하였는데 무대라는 공간이 김형민이라는 아티스트에게는 어떤 곳이고 앞으로 어떤 것을 그 무대에 올려놓고 싶으신지요?
김: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에게는 무대에 선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저도 앞으로 살날이 더 많아 작업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을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뭔가 특별하고 버라이어티한 것을 보이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회 구성원, 그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무대의 역할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예술적 행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극장에서 공연을 해야하는가, 예술의 정의는 무엇인지?, 규칙으로 너무 난무되고 있는것은 아닌지, 예술의 역할이 너무나 잘려지는 것은 아닌지,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고 예술의 행위가 인정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라는 질문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나 계획된 가운데서 시스템에 맞추어 어떻게 해 나가야하는거지라는 생각에 그 상황이 민망하기 보다는 앞으로가 힘이 드네요. 힘이 든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었어요. 결국에는 벗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글_ 정혜정(자유기고가, Faeb Consulting 대표)
사진제공_ 정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