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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변재범과의 대담

변재범은 서울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무용단 ‘더 봇 댄스 컴퍼니’를 창단하여 한국 컨템포러리 무용 작품들을 안무하고 있다. <방랑>으로 크리틱스 초이스에 선정된 바 있고,  <곳>은 서울무용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안무력을 인정받은 무용가. 최근 현대미술관에서 최우람 작가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다시 한번 한국무용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 변재범 안무가를 만나보았다.




정: 무용수라면 누구나 입단하고 싶은 좋은 무용단에서 직업 무용수로 활동하면서도 자신의 무용단 창단을 결심하셨을 때는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변: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무용단에서 그간 배워왔던 레퍼토리들을 계속 공연하고는 있지만 과연 무엇이 변하고 있는가에 대해 늘 궁금했어요. 시대에 따라 주제가 바뀌었지 춤사위나 움직임은 동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존되어야 하는 레퍼토리의 춤사위를 습득한 제가 움직임을 변형시켜보거나 다양하고 새로운 재도전의 작업을 하면서 보다 많은 관객들과 한국무용 창작의 과정을 공유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제일 컷던 것 같습니다.


정: 다양한 한국 전통 레퍼토리를 섭렵하셨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반드시 마스터해야 하고 나의 작업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변:  지금 보존되고 있는 전통 레퍼토리들이 다 너무나 좋고 재미난 춤사위와 호흡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적으로 몸과 하나로 잘 맞추어져서 관객들과 호응이 될 수 있는 것은 타악기로 분류되는 소고춤입니다. 선생님들이 “그 안의 장단을 가지고 논다”라는 표현을 하셨을 때 무대 위에서 ‘몸의 움직임과 악기 구성이 같이 함께 논다’라는 부분이 맘 속에 ‘쾅’하고 닿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직접 배워보지 않으면 함부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소고춤을 배우면서 악기를 함께 다루는 학습을 진행해 왔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작품이 발사위, 몸의 리듬감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용단을 창단한지는 얼마나 되었고 그 후 몇 작품이나 안무를 하셨는지요?

변: 7년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작업을 해왔습니다. 작품의 갯수라기 보다는 다양하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직 대표작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가장 관심을 받아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작품으로는 처음 대극장에 올렸던 <방랑>과 <농현 희롱하다>, <곳>, 그리고 가장 최근작 <작은 방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정: <작은 방주>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최우람씨와의 작품인가요?

변: 맞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우람 작가님과 콜라보 작업을 하게 된 부분인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를 했지만 현대차 시리즈에서 지원을 받은 작업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공간 안에 저희가 또 다른 작업물로 관객을 만난 공연이었습니다.


정: 최우람 작가와 콜라보를 하시게 된 계기는요?

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공연활성화 지원 사업에 무용 분야로 저희 더 봇 댄스 컴퍼니가 선정이 되어 최우람 작가님과 콜라보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정: 어떤 작품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변: <작은 방주>는 일반 극장 공연이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이동식 공연이라는 것이 색다를 수 있고요. 최우람 작가의 원탁과 방주 이야기가 한국무용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작품의 키워드를 저는 ‘공존’이라 생각했는데 최우람 작가님도 지금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부분, AI, 4차 산업화 하는 기계적인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작업 재료는 폐지를 사용했어요. 옛 것과 지금의 중간지점, 가야 하는 방향에 관한 메시지는 한국무용의 전통과 창작이 공존하는 지금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정: 이 작품에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변: 아! 정말 ‘공존’이었습니다. 생존, 공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지켜나가야 할 것들, 사람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그 지점이 어디일까라는 부분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동시대성,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 같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환경을 받아들일 때의 자세라고 해야할까요?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질문을 던져보는 그런 것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정: 그 부분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 나가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변: 처음에 현대미술관의 공간을 보았을 때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워낙 최우람 작가님의 설치미술작품이 웅장하기도 하고 그 웅잠함 속에서 기계 설치물이 움직이면 음악도 나오고 영상까지 이미 완벽하게 조화가 이루어진 작품이라서요. 그 속에 무용, 움직임을 더해 어떻게 또 다른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 끝에, “사람의 움직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재미있게, 기계에 사람의 숨을 입혀보자”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움직이는 기계가 아무리 섬세하게 움직여진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숨으로 만들어지는 움직임을 크로스해보면 어떨까 하는 면에서 움직임을 많이 연구했어요. 그리고 설치미술이 있는 공간이다 보니 설치미술 옆에서 그냥 춤을 추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움직이는 공간 내에서의 빈틈에서 무용과 작업물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내는 부분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움직이는 (배의) 노와 밀짚맨을 초단위 시간으로 모두 녹화를 해서 움직임의 모든 빈틈의 동선을 짜게 되었고, 그 빈틈의 공간을 춤으로 메우면서도 또 드러나는 빈 공간의 순간들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전시 공간이 1, 2, 3으로 나뉘다 보니 관객들에게 또 다른 서사를 입혀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과감히 실험과 도전을 해본 작품이었습니다. 


정: <방랑>이라는 작품을 연상하게 된 계기는?

변: 방랑과 방주가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배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예요. 배가 위에 떠있지만 배 밑에 바닷물, 심해 깊은 곳의 알지못하는 생명체들, 그 모든 것, 알 수 없는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함께 가야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지 않을까? 라는 부분을 생각했어요. 유토피아, 보이지 않는 저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만의 방주를 타고 가다 보면 저 끝에는 유토피아가 있지 않을까? 각자가 생각하는 저 끝은 어디일까? 그런 생각을 담은 작품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만나고 있는 상황들은 매번 기로에 서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안이라고 해야할까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저의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싶었던 부분이 <방랑>, <곳>, <농현> 이렇게 발전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 마지막이 최우람 작가님과의 <방주>를 만나면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기존의 이야기를 좀 더 과감하게 표현을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연계되어 온 결과물입니다.


정: 창작 메소드, 작품 모티브를 찾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은 어떠하며 특히 한국무용에서의 움직임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시는지, 안무과정이 궁금합니다

변: 춤의 베이스 자체가 한국춤의 호흡이다 보니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제가 꼭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사위와 한국호흡의 들이마셨다 내뱉는 들숨, 날숨으로 자연스럽게 상체가 움직여지는 좌우세, 그리고 손끝, 발끝에서 느껴지는 섬세함 등입니다. 창작 과정에서 이 부분들을 새기고 변형, 해체해보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정: 차세대 유망안무자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계신데 현재 전통과 컨템포러리를 오가며 그려나가고 싶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시는 춤꾼으로서 한국춤에서 표현하고 싶은 동시대성은 무엇인지요?

변: 실은 제가 해오고 있는 작업 과정과 방식 자체에 대해서 제 스스로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이것이 맞는지 의문도 굉장히 많이, 외롭게 가졌습니다. 이제는 많이 단련되었지만 처음에는 “저게 무슨 한국무용이야?” 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장르가 만들어지지 않은 하나의 과정–저는 중간의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는 과정에서 ‘이것이 맞다, 틀리다’라는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 과정 자체가 나중에는 가치있는 일이 될거라고 생각을 하고 용기를 내서 꾸준히 무언가를 위해 지향해 나아가는 한국무용 안무가로 기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글_ 정혜정(자유기고가, Faeb Consulting 대표)

사진제공_ 변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