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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박순호와의 만남 - 직업으로서의 안무가 2

 박순호 안무가는 현재 작품 활동 뿐 아니라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무용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과연, 충실한 무용수로 남고자 하는 경향이 많은지, 반대로 창작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많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위한 안무 교육은 실제로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앞선 몇 번의 인터뷰에서도 줄기차게 제기했던 질문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무용수로서 실력이나 경륜을 쌓고 난 다음 안무에 입문하는 게 통례처럼 여겨지지 않느냐는 것이에요. 실제로 그런 기대나 제의를 받아 억지춘향으로 작품을 만들어 올렸다는 무용수들이 있으니까요. 만일 창작에 시동을 거는 힘이 그런 기대에 응당 따라야겠다는 고분고분한 생각이라면, 작가로서의 자기 확보는 위협 받게 되고, 그러면 좋은 작품으로 향하는 안무 리서치의 토대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이것이 제가 줄곧 천착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안무가 속에서 내적 충동이 들끓지 않는데 무엇을 리서치 한다는 말이에요.

 안무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진 1] 인터뷰 중

 “그게 참, 슬픈 일이기도 한데… 이런 면이 있지요. 현대무용 자체가 생리적으로 춤추는 자의 생각, 의도를 반영하지요. 관객은 그걸 보려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추더라도 자기화 되거든요. 아시겠지만, 많은 컨템포러리 무용수들이 ‘거의’ 안무가잖아요.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을 움직임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어떤 신체 행위든지, 표현 방식을 동원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창작자 마인드에 가까워지긴 하는데…

 목적만 분명하다면 저는 완벽히 무용수로서만 살아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주변에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을 보면, 너무 테크닉을 구현하는 것 위주로 교육을 받다 보니까 자기에게 익숙한 딱 고만큼의 프레임 안에서만 생각하는 듯해요. 안무도 좀 접해 보고, 자기 생각을 적극 반영해 보고, 어떨 때에는 철저히 기량만 보여 주고, 골고루 해 봐야 스스로에게 선택권이 생기는데, 기량 위주로만 배우다 보니까… 흔히, 젊을 때에는 음악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몸을 막 움직이는 것이겠지요? 곡이나 소리 자체를 해석하고, 자기 움직임을 가지고 무얼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런 다음에 표현하지 않잖아요. 이미 교육이 테크닉에 치우쳐 있고, 또 그 나이 때에는 자연히 거기에 관심이 많고, 그렇다 보니 뒤늦게 혼란을 겪는 게 많이 안타깝지요.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안무 수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안무는 다른 감각을 요하거든요. 요가 수련을 안 해 본 사람이 요가를 배울 때에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 감각의 맛은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창작법 수업이 불편할 수밖에요. 본능적으로 다리를 들고, 멋있게 추는 모습을 보여 주고, 본인이 즐거워야 되는데… 자꾸 고민하라고 하니까. 어떤 것을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라고 하니까. 그런 요구에 떠밀려 만들고 났더니, 자기가 만들었음에도 그것이 정말 자기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지요.

 이 혼란은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뒤늦게 실전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학생 시절에는 그냥 춤추는 게 좋고, 요만큼 차 올렸던 다리를 이만큼 차게 되면 성취감을 느끼고, 남들에게 칭찬 받으면 거기에 만족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느 순간 안무자와 만났을 때에는 ‘자기 것’을 드러내야 되거든요. 그때 비로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 시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제서라도 고민하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고민하지 않아요. 당장 얼마간은 가지고 있었던 테크닉들로 자기 역할을 채워가며 버틸 수 있거든요. 그러나 결국은 똑같은 고민이 반복되지요. 나중에 생각이 더 성숙하고 자아가 깊어지고 나면, 개념적인 것을 담을 그릇이 부재하다는 데에서 또 다시 곤혹을 치르지요. 저에게도 몇 번에 걸쳐 계속 사춘기가 오고 있습니다.”


 (…)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됩니다. 아무도 그/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리서처가 붙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자료나 재료를 수집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도 그/그녀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고 아무도 적합한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스스로 완성해내야 합니다.
 (…)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 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 178-179


 스스로 ‘자기 것’을 담아 낼 그릇이 되는 고독한 작업. 그런 작업이자, 직업. 왜 안무가의 길을 택하였는지 물었습니다.



[사진 2, 3] <유도>



[사진 4] <유도> 연습 장면

 “저는 무용가로서, 한국에서 얘기하는 소위 ‘전형적 코스’를 다 밟았습니다. 춤 열심히 추고, 많은 공연에 출연하고, 콩쿠르에 입상하여 군 면제도 받았고요. 그런데 너무 많은 작업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움직이는 게 너무 싫더군요. 몸으로 무얼 만들어내는 게…

 왜 그럴까?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이게 뭐지? 만날 똑같은 패턴이야. 내가 꼭 움직임으로 표현해야 해?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은 뭐가 있지? 모르겠는데? 배우지 않았거든. 아, 그러면 안무를 배워 볼까.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런 생각들을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방황을 했지요. 때마침 허리도 다쳤어요. 그런데 또 하필 그 시기에 외국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허리가 안 아프게 출 수 있는 기술은 없을까, 그런 움직임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고민까지 맞물리다 보니 안무를 하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안무 공부를 시작한 곳은 네덜란드에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었는데, 처음에는 다들 말렸어요. 그런 걸 뭘 교육기관에 가서 배우니? 촌스럽게. 꼭 그런 데엘 가야 해? 그냥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 아니야?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지요. 그래서 실은 고민을 좀 하긴 했는데, 저는 교육기관을 선택했어요.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빨리 알고 싶었거든요. 내가 전적으로 경험을 통해 느끼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 시간을 좀 줄여 보자. 전문적인 기관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면 그 나머지는 내가 거기에 나만의 것을 도입해서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직접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외국어도 안 되는데 막 도전하고, 오디션도 보고… 결국 학교에 들어가게 됐죠.

 사실은 제가 워낙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보면 신기해하는 성향이기도 해요. 돌아보면, 안무가의 길이 제 성향과 잘 맞는 선택이었음을 느낍니다.”

 아, 이런 사람이라면 의외의 취미나 영감의 원천이라도…? 나는 불쑥 궁금해졌습니다. 단원들과 단체 활동을 하는 것, 직접 활을 쏘아 보는 등 리서치를 하는 것 외에, 일상적 활동이나 여가 생활 중에서 머릿속의 ‘안무 회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없는지, 화제를 옮겼습니다. 그는 이에, 아이키도(합기도)를 수련하고 있으며, 이 무술의 움직임은 특별히 춤의 원리와 닮아 있다고 했지요. 그 밖에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며…

 “솔직히 요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는 심정이에요. 아까 ‘사춘기’라고 표현했는데, 40대에도 이런 시기가 오네요. 계획대로라면 지금 한창 진행하고 있어야 할 작업도 있지만,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같아선 무엇도 하기가 싫은걸요. 특별히 만들고 싶은 게 떠오르지도 않고요. 그래서 불안하지요. 어떨 때에는 잠도 안 오고… 이랬던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불안함도 받아들이고, 이런 시기조차 넘어서고 싶은 마음 또한 가지고 있고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용단이라는 조직이 장차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아니, 그게 뭐 방향성 같은 것이라기보다도… 단원들과의 관계, 작품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대한 고민들이지요.

 요즘은, 뒤돌아보는 시간인 것 같아요.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기인 거지요. 그래서 아이키도만 하고, 설거지나 빨래하면서 일상을 살고, 때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렇게 지내보고 있어요.”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중한 요소입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사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소설의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키워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을 내 안에 서서히 만들어 갑니다. 그런 사전 작업에 들이는 시간,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일으켜나가는 기간, 일어선 것을 냉암소에서 진득하게 ‘양생’하는 기간, 그것을 밖으로 꺼내 자연의 빛을 쏘이고 단단히 굳어져가는 것을 세세히 검증하고 쿵쾅쿵쾅 망치질하는 시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 165-166

 내가 생각건대 사람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적인 힘을 바싹바싹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생해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의뢰를 받아 소설을 쓰는 일도 있습니다. 직업적인 작가의 경우에는 아마 대부분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은 의뢰나 주문을 받아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세월 동안 기본적인 방침으로 삼아왔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지도 모릅니다. (…) 외부에서의 의뢰나 마감이라는 제약이 없으면 소설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분도 어쩌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애초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적 충동이 없었다면 아무리 마감 날이 정해졌어도, 아무리 돈을 싸 들고 와서 울며불며 매달린다고 해도 소설이 술술 써지는 게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 177-178


 예기치 않은 방황에 처한 예술가의 고뇌를 어떻게 전부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그 무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직업으로서의 안무가’라 붙이기로 한 데에는 하루키의 수필집과 연결시키는 것 외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안무가는 무용수의 다음 단계에 놓인 통과 의례가 아니라, 고유한 사고체계, 경험, 훈련이 수반돼야 할 진지하고 독립적인 ‘직업’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만한 책임과 체력이 따라야 하는 특수한 직업인 것입니다. 육체적 근육 뿐 아니라 정신적 근육이 빠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무용수에 비해서 연령 제한이 없는 덕분에, 지속적으로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직업의 특징으로 꼽아도 큰 이견은 없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그 ‘지속’이란 게 얼마나 냉엄한 것인지요. 버틴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외브르(œuvre)’를 가진 작가로 살아남는 것 말입니다.

 길 잃고 지친 예술가의 마음이 쉬어갈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부디 검질기게(!) 안무의 마라톤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전력질주가 아닌, 홀가분한 발걸음의 마라톤을요.

 마치며, 하루키 선생의 말을 마지막으로 청해 봅니다. 소설가 뿐 아니라 안무가와 모든 예술가들이 기억해 주시길…


 (…)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소설가는 물론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 사람은 일단 못할 짓, 이라고 말해버려도 무방할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뭐랄까, ‘어떤 특별한 것’이 점점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나름의 재능은 물론 필요하고 그만그만한 기개도 필요합니다. 또한 인생의 다른 다양한 일들과 마찬가지로 운이나 인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 16-17






박순호(브레시트무용단 대표, 예술감독)
주요 안무작품 : <유도>, <활>, <人_조화와 불균형> 등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 안무자 과정 졸업
한성대학교 및 동대학원 무용과 졸업 
2016 한국춤비평가상 <조절하다>
2014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유도>
2009, 공연과 리뷰(PAF) 올해의 안무가상 
2004, 독일 PACT Zollverein 젊은 안무가 선정

*인용문 출처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2016)


글_ 김보슬(자유기고가, 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공공예술학 MFA)
사진 제공_ 브레시트무용단(Bereishit Dance Company)